'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부산 맛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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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맛집들

식사 시간이 아닌데도 '범태손짜장'은 손님들로 인해 빈 자리가 없을 정도. 그래서 '범태손짜장'의 주방은 하루 종일 김이 걷힐 시간이 없고, 일손을 놓을 시간도 없다.

외국에서 부산을 찾은 지인들이 기자에게 가장 많이 물어오는 질문은 아무래도 부산의 맛집에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그 외 다른 질문들(예를 들어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 따위)과는 달리 명쾌한 답을 내놓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것은 '외국인들의 입맛'이라는 변수(變數) 때문이다. 이번 주 기사의 주제는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부산의 추천 맛집'이다.

부산에 사는 여러 외국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려 했지만 시간상의 이유(?)로 포기하고, 대신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바이블과도 같은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한국편에 언급된 부산의 맛집을 다녀봤다. 외국인이 추천하는 부산의 맛집, 은근히 흥미를 끈다.

2009년 개정된 '론리 플래닛' 한국편에서는 부산의 맛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부산의 음식은 부산 사람들과 닮았다. 맵고, 짜고, 또한 신선한 것이 딱 부산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홉 곳의 맛집을 소개하고 있다. '개미집(낙지볶음)' '금수복국' '돌고래(순두부찌개)' '동래할매파전' '범태손짜장' '스시모리(초밥)' '포도청(갈비)' '할매재첩국' 'B&C 베이커리'. 이미 아는 곳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곳도 있었다. 그중 값싼 집으로 세 곳을 골랐다.
향이 진한 소스의 맛 '범태손짜장'


상호명이 낯익지 않다. 서면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인근이라는데…. 그러나 막상 찾아가 보면 누구라도 '아! 여기구나' 한다. 롯데백화점 바로 옆 작은 골목 귀퉁이에 위치한 붉은 간판. 부산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쳐갔을 정도로 유동인구가 많은 요지에 자리잡고 있다.

'범태'라는 상호명은 이 집 사장의 이름이다. 신범태(56) 사장은 12년 전 창원의 한 노점상에서 수타자장면을 먹고 반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노점상 주인을 스카우트해 부산에 자장면집을 열었다. 바로 지금 이 가게의 주방장이시다.

자장면집이라기보다는 시장통처럼 번라하다. 식사 시간도 아니었는데 손님들로 빈 자리를 찾기 힘들다. 당연히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이거 자장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 그러나 자장면 맛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사실 겉보기에는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자장 소스에 재료가 듬뿍 들어간 것도 아니다. 싼 가격(한 그릇 3천 원)만큼이나 양도 적다. 남자들은 아무래도 500원을 더 보태 곱배기를 먹는 편이 좋을 듯. 그런데 자장의 향이 진하면서도 은근히 달짝지근한 것이 매력이다. 단맛을 강하게 하다 보면 자장 본연의 맛이 옅어지기 마련인데 이곳의 자장은 그렇지 않다. 이거, 외국인한테 한 수 배웠다.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연중 무휴. 자장면집이지만 배달은 하지 않는다. 051-809-8823.


가격 대비 훌륭한 순두부찌개 '돌고래'

아! 반갑다. 낯선 타국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고등학생 시절,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 깊숙이 파묻혀 있는 '돌고래'를 찾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얼마나 헤매었던가. 유명한 메뉴로는 순두부찌개와 된장찌개. 그러나 그 맛은 그다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고, 놀랄 만큼 싼 가격만이 기억에 남아있는 곳이다.

10여 년 만이다.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3천500원. 단출하다. 반찬이라고 해 봐야 배추김치와 어묵조림, 그리고 오이냉채가 전부다. 그래도 벌건 순두부찌개는 입맛을 당긴다. 그런데 외국인들도 이 벌건 '스프'를 좋아할까? 옆 테이블에 일본인 일행들이 열심히 먹고 있다. 역시 순두부찌개다.

10년 만에 먹어본 순두부찌개는 그다지 깊은 맛이 없다. 그래도 가격 대비 만족도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밥도둑은 배추김치다. 알맞게 익은 녀석을 쭉쭉 찢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워 버린다. 여기서 잠깐. 이곳에서 밥을 먹거든 입 청소를 꼭 할 것. 이(齒) 사이로 붉은 고춧가루가 범벅이 된다. 오전 7시∼오후 10시. 연중 무휴. 051-246-7233.


가볍지만 진한 낙지볶음의 맛 '개미집'

개미집은 39년 전 국제시장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낙지볶음이 주 메뉴. 지금은 남포동을 비롯해 서면, 해운대 등 부산 곳곳에서 그 간판을 볼 수 있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국제시장의 본점.

낙지볶음을 시키려다 낙지곱창볶음(흔히 '낙곱'이라 부른다)을 시킨다. 역시 낙지는 곱창이랑 천생연분이다. 1인분 8천 원. 워낙 낙지를 좋아하다 보니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나 명성이 전부는 아니었다. 부산 전역에 여러 분점을 내면서 그 맛이 다소 변했다. 깊은 맛보다는 양념 맛이 강하다. 그래도 기본은 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흔히 개미집과 동래구청 옆 조방낙지를 비교한다. 어디가 나은지 정답은 없겠지만, 기자는 조방낙지 손을 들어주고 싶다. 조방낙지의 매콤함은 입에 착 감긴다. 그만큼 맛이 깊다. 그러나 개미집은 조금 달짝지근하다. 단맛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개미집이 좋겠다.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은 개미집을 선호한다. 깊은 맛보다는 가볍고 진한 맛을 좋아하기 때문일 듯. 오전 10시∼오후 10시. 연중 무휴. 051-246-2248.



개미집을 끝으로 부족하나마 '론리 플래닛' 맛집 순례를 마치고 문득 떠오른 생각. '나에게 소개하라고 했다면 더 좋은 맛집이 많은데….'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어디까지나 외국인의 입맛. 우리네 입맛과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글·사진=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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