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 읽기] 경계 그 너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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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야 김 독자위원·사진예술가

연평도 사건 이후 신문에서는 연일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연평도 주민들을 위한 생계보장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한·미 FTA가 체결되었다. 이를 놓고 '굴욕적인 퍼주기', '대책 없는 협정', '불평등한 망국적 협약'이라는 말이 쏟아지고 있다. 필자는 지난 번 '부일읽기-경험 위에 서다'를 쓰고 난 후 "왜 예술가가 예술이나 문화에 대해 말하지 않고 정치나 역사에 대해서 말을 하는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이번 글에서는 문화에 집중하고자 한다.

지난 3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온 예술가 14인을 맞이하기 위해 원도심문화예술창작공간 '또따또가'에는 또따또가 입주작가들은 물론 '대안공간 반디', '오픈스페이스 배', '독립문화공간 아지트'를 비롯하여 민간 차원에서의 예술교역에 대해 관심 있는 많은 기획자들과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토의는 한·일 민간예술교역을 위한 상호 간의 예술가가 처한 입장 이해와 민간 중심의 워크숍이나 레지던시 교환 프로그램에 대한 향후 계획들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시(市)가 문화예술인에 대해 시설지원을 한다든지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 예술가들을 위해 지원하는 일이 거의 전무한 일본의 경우, 후쿠오카의 젊은 예술가들이 처한 상황은 부산보다 더 열악한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후쿠오카의 대안공간이나 민간 운영 혹은 비영리 갤러리는 수적으로나 지원에 있어서나 열악하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인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열심히 넘나드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예술가들이나 일본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제반 문제점들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같은 날 부산일보 문화면에 난 한 기사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공평하게 지원했으면…'섭섭한 지역 예술인들>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아트 팩토리 인 다대포(이하 아트 팩토리)'에 17억 원이 지원될 것이라는 기사가 났다. 예술문화 인프라가 태부족한 부산에서 시민들을 위한 소중한 공간인 '아트 팩토리'는 최근 많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이를 위해 부산시가 적극 나서서 돕겠다는 것은 분명 당연하다. 하지만, 부산일보에서도 지적하다시피 대안공간이나 비영리갤러리가 갖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는 비단 '아트 팩토리'에만 국한 된 것도 아니고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부산시는 '아트 팩토리'에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지원을 하기에 앞서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한 당위성과 타당성 그리고 형평성을 먼저 획득해야 할 것이다. 자칫 부산의 문화예술인프라에 대한 지원이 한곳으로 편중된다면 문화예술계의 불평등과 권력집중화를 낳게 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화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불평등은 우리 사회 전반이 앓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될 것이다.

문화예술인프라 육성을 위한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지원은 그 어떤 것보다 근본적이라는 것을 일본 후쿠오카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문화예술에 있어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요인들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면, 예술과 행정이 만나는 지점, 문화와 경제가 만나는 지점, 그리고 사회와 정치가 만나는 그 지점이 바로 문화예술의 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정치가의 '보온병 폭탄' 사건은 정치적인 해프닝이자 대중들이 패러디로 소비하는 대중문화이기도 한, 즉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어느 지점에서 의미들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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