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법치가 한국경제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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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근대화 상징이지만 불건전한 기업지배구조와 경영권 불법 승계 과정으로 논란이 되는 재벌의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삼성그룹 강남사옥. 부산일보DB

양극화, 고용 없는 성장,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몰락… .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의 근원은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에 주도권을 넘긴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신자유주의에 종속된 한국경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이데올로기에 따라 불공정하고 과도한 경쟁을 벌이는 재벌의 개혁에 대해 각각 해법을 내놓았다.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 재벌개혁을 함께 이뤄내자는 것과 재벌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하자는 것이다. 두 책 모두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지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다.


대립과 반목에 난마처럼 얽힌 양극화·재벌개혁 …

실패한 좌·우파 자유주의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 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가 한국경제 해법을 놓고 대담한 결과를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로 엮었다. 이들은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펴낸 바 있다. 이들이 7년 만에 다시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중요한 갈림길에서 이명박 정부의 우파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 이미 실패로 검증된 좌파 신자유주의로 회귀할 우려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외, 종횡무진 한국경제 / 김상조

이들은 실패한 좌·우파 자유주의가 한국 경제의 대안일 수 없다고 본다. 영·미식 자유주의에 깊이 물든 풍토에 더해 박정희, 재벌 체제 등 대립과 반목을 일으키는 낡은 유산들이 난마처럼 얽힌 현실을 돌파하려면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복지국가 비전'이란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당면 경제 문제의 해결책은 복지국가에 대한 견고한 지향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때 복지는 시혜나 2차 분배가 아니라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 시스템이다.

저자들은 가난한 사람만 골라 시혜를 주듯 지원하는 미국, 영국식 복지를 '선별적 복지' '잔여적 복지'로 지칭하며, 생산과 복지가 긴밀히 연결돼 선순환하는 '생산적 복지'와 구분한다. 생산적 복지의 사례는 북유럽, 독일이다. 극빈자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는다는 면에서 '보편적 복지'로 불린다. 보편적 복지의 실현은 재벌 개혁 운동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OECD 평균인 90퍼센트 수준까지 올리려면 한 해 12조 원의 예산(2010년 기준)이 필요하다. 가입자들이 일 인당 월평균 1만 1천 원만 추가 부담하면 한국도 유럽에서 시행하는 무상의료가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민간 보험회사 특히 삼성생명을 주력 계열사로 두고 있는 삼성그룹의 입지가 줄어든다.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함께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복지국가의 비전 자체가 '모든 것을 시장에서 해결하라'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안이 되는 이유다.

복지 예산 증가를 위해서는 중산층을 비롯한 국민과 정치인들의 결단이 요구된다. 복지 예산 증가는 세금 증액 없이 불가능하다. 세금을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같이 쓰는 돈'으로 보고 복지 지출을 '공짜'가 아닌 '공동 구매'로 보는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

저자들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이란 대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벌 해체에 대해선 신중하다.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 재벌 해체가 결코 공정한 경제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국적 기업, 사모펀드에 인수돼 기술 유출, 구조 조정 등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저자들은 재벌 가문에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는 대신 복지국가 문제와 연결시켜 명확한 대가를 받아내면 된다고 본다. 그 대가는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 제한, 설비와 연구개발 투자 확대, 미래형 신산업 투자, 복지국가 건설 및 부자 증세 협조 등이다. 장하준 외 지음/부키/424쪽/1만 4천900원.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재벌과 모피아(경제관료)에 대한 경계를 당부한다. 재벌은 신자유주의의 우산 아래 불공정한 경쟁을 벌이고, 모피아는 이들이 시장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돕는다. 대기업 경제연구소들은 기업에 유리한 통계를 발표함으로써 시장 이데올로기를 조종하고 모피아들은 서민 경제의 몰락, 산업의 극심한 양극화를 외면한다고 본다.

김 교수는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재벌 3세들의 행태에 비판의 날을 세운다. 재벌 3세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보다 계열사의 사업기회를 가로채거나 계열사의 지원을 통해 안전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분야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재벌 3세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가 주로 서비스업이라는데 있다. 서비스업은 영세기업, 영세자영업자들이 밀집해 있는 영역이다. 최근 재벌계 대형마트와 SSM이 골목 상권을 잠식하고 재벌계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 업체들이 소상공인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상황이다. 계열사 지원을 등에 업은 재벌 3세들의 서비스업 진출은 양극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와 후진적 지배 구조 등을 바로잡는 법치주의 확립과 '기업집단법' 제정을 촉구한다. 김상조 지음/오마이북/348쪽/1만 5천 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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