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목표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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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세계인문학포럼 개최를 기념해 백년어서원이 지난달 마련한 인문학 릴레이 한마당. 백년어서원 제공

"인문학이 환대와 배려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볼 때 민간이 앞장서서 움직이는 것은 마땅해 보인다. 어떤 예술적 감성도, 어떤 비판적 지성도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길 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입시의 틈바구니나 쇠락한 원도심에서 시작한 부산의 인문학은 민간 주도의 그 실천적 영역을 관통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김수우 백년어서원 대표는 최근 부산의 민간 주도 인문학 현장들을 답사했다. 그는 민간 주도 인문학 현장을 '바까데미아'라고 부른다. 바까데미아는 아카데미아(대학) 바깥에서의 인문학이다. 여기서의 인문학 목표는 이론과 개념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김수우 백년어서원 대표
'오늘의문예비평' 기고
"속도·성과주의 탈피해야"


김 대표는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겨울호(통권 83호)에 '저항하라, 상상하라, 그리고 사랑하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는 바까데미아의 현실과 지향점이 촘촘하게 정리돼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청소년 인문학 커뮤니티 '인디고서원', 열린공간으로 생태·환경의 가치를 지향하는 '공간초록-연구모임비상', 인문예술의 융합을 꿈꾸는 '문화공간 빈빈', 부산대 앞의 젊은 층 문화를 이끄는 '카페 헤세이티'와 '생활기획공간 통', 문화독해운동/지식나눔공동체 '이마고', 원도심 운동을 하는 '백년어서원', '신생인문학연구소', '수이재' 등이 나온다.

김 대표는 바까데미아의 공간들이 연대의식을 갖고 공동관심사의 원천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개성적인 장소성을 확보한 이들 공간이 다양한 만남을 통해 공존의 기술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이란 '연대를 향한 길 찾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의 인문학 네트워크가 아직은 밀도가 낮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이런 한계에도 민간주도의 인문학 커뮤니티는 부산에서 실질적인 인문 지도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인문학을 한낱 유행으로 보는 현상은 가장 경계할 일. 일 년에 책 몇 권 읽지도 않으면서 인문학 강의에 몰려다니는 것이 그 예다. 다문화, 통섭, 공감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튀면서 인문학이란 말도 덩달아 액세서리처럼 딸랑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런 현상은 자본에 의해 길든 인문학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속도주의, 편리주의, 성과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삶의 의미를 묻는 문제, 실존의 방식을 묻는 문제는 편리와 성과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학에서 인문학이 죽어버린 이유라는 것이다. 인문을 지향한다는 것은 요구되는 성과와 싸우는 일이다.

김 대표는 로댕의 말을 인용해 '진보는 느리고 불확실한 것'이라며 인문학도 더 불편하게, 더 천천히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섬세하게 사물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실존의 문제와 타자에 접근할 수 있음이다.

김 대표는 자본에 주눅이 들지 않는 인문학을 살리는 방법은 바까데미아의 고유한 영역과 지속적 활용의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본다.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바까데미아의 지속과 재생산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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