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둥지'] ⑧ '나가테 도오리'(광복로) 야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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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승객 모두 일어나 용두산 향해 큰절"

1959년 5월 30일자 부산일보에 실린 광복로 야시장 관련 기사. 경남도, 부산시, 경찰서가 허가기간이 끝난 광복로 야시장의 존폐문제에 대해 협의했다는 내용이다. 광복로 야시장의 번화한 거리를 찍은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광복로 야시장에는 거리 한복판에 포장을 깔고 갖가지 물건을 파는 전들이 많았다. 부산일보DB

지금의 광복로를 일제 강점기에는 '나가테 도오리'라고 했다. 한자로는 '長手通'이라고 썼는데, 억지로 풀이하면 '긴 팔 뻗친 것 같은 거리'쯤이 될 것 같은데, 필경 '긴 거리'란 뜻이 아닌가 싶다. '나가테 도오리'는 1930~40년대 부산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그 당시 부산의 인구는 고작해야 20만 정도로, 지금 같으면 중소도시의 규모에 딱 맞았다. 부산 시가지라고는 대신동, 보수동, 부용동, 부민동 등 지금의 부산시 서구 일대와 현재의 영도구와 중구, 그리고 초량동, 수정동, 범일동에 걸친 지금의 동구의 일부, 그게 전부였다. 인구는 지금의 15분의 1, 땅덩어리는 확실하진 않아도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용두산 신사 앞 러시아 양복점 즐비
숙부 따라 광복로 야시장 자주 방문
갖가지 물건 파는 전들 거리 '점령'


통계 숫자로는 인구로나 도시 규모로나 빈약했던 그 당시지만, '나가테 도오리'는 자못 번성하고 흥청대고 있었다.

서쪽에서, 전차가 다니던 길로 해서 부평동 1가를 거치면 이내 '사카에 마치'(昌町)였다. 오늘날 창선(昌善)동이며 신창(新昌)동의 창(昌)자는, 일본말 거리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런 '사카에 마치'에 들어서면, 상점이 줄줄이 늘어선 거리의 오른쪽에 소화관(해방 후 동아극장)이 있었고 그 뒤편, 남포동으로는 부산극장이 넘겨다보였다.

소화관 지나서 이내 반대편으로 훗날 문화극장이 된 보래관이 있었는데, 그쯤에서 '사카에 마치'는 끝이 나고, '나가테 도오리'가 지척으로 내다보였다.

대청동에서 내려오는 큰 길이 창선동 파출소를 끼고 나오는 좁은 골목과 어울려서는 '나가테 도오리'와 합쳐지는 지점에 별로 크지 않는 로터리가 있었는데, 그 언저리에서부터 '나가테 도오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로터리를 지나 번들거리는 상가를 거치면 이내, '용두산 신사'(지금의 용두산 공원) 앞을 지나게 되어 있었다.

뒷날, 남포동으로 나가서 달리게 된 전차도 '용두산 신사(神社)' 앞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다. '용두산 신사 앞!'이라는 차장의 고함이 떨어지면, 전차 안의 승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용두산을 향해서 큰절을 해야 했다.

아무튼 '용두산 신사' 앞을 지나면 백계 러시아인들이 경영하는 양복 가게 몇 집이 줄지어 있는 것과 마주쳤다. 어린 나이었지만 야릇함을 느낄 수 있었다. 소상하게는 몰라도 제 나라며 제 고향을 잃고는 아예 인종이 다른 이역에 와서 살면서 큰 상점을 경영하고 있는 것이, 때로는 낭만적으로 느껴지고 때로는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러시아인들의 옷 가게가 끝나는 지점에는 지금의 동광동으로 빠지는 골목이 나 있었다. 거기를 스쳐 지난 다음, 동쪽 끝에 있던 상생관(훗날 부민관·시민관)이란 이름의 극장 건너편으로, 미나카이 백화점과 그 바로 옆의 옛날 부산 부청(府廳) 청사가 넘겨다 보이던 지점에서, 지금으로 치면 롯데월드가 넘겨다 보이는 지점에서 '나가테 도오리'는 끝이 나 있었다.

한데 그 '나가테 도오리'에는 정해진 날, 밤에 야시장이 눈부시게 열리곤 했다. 우리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막내 숙부를 따라서 자주 장을 보러 나섰다.

밝게 조명을 비추면서, 거리 한복판에 포장을 깔고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전들이 한 줄로 '나가테 도오리'의 거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동화며 만화책을 파는 전도 껴 있었다.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는 '노라쿠로'라는 개가 주인공 노릇을 해내는 신이 나는 만화 말고도 마음 내키는 만화를 뒤적거리는 재미가 사보는 재미 못지않았다.

그렇게 '나가테 도오리'의 야시장은 화사하게 밤거리를 빛내곤 한 것인데,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난 오늘날, 광복로의 밤거리, '빛의 거리'라고 불릴 만큼, 휘황찬란한 밤거리에 그 전통을 넘겨주고 있을 것 같다.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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