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진정성'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다큐멘터리

프랑스 위베르 니오그레 감독의 '마닐라로의 귀환'. 프랑스 필리핀 합작영화.

올해 다큐멘터리 부문은 그동안 아시아와 한국의 다큐멘터리에 지원해 온 AND(아시아 다큐멘터리 네트워크)의 결과물을 만끽할 수 있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풍부한 이야기와 깊이 있는 접근이 돋보인다.

· AND지원작 올해 9편 상영=AND지원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 9편이 상영된다. 26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작 가운데 1/3 수준이 넘는다. AND에서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 위주로 해마다 13편씩 지원하고 있지만 제작 기간이 2~3년에 달하는 작품도 있어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중에는 2009년이나 2008년, 심지어 4년 전 지원작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류미례 감독의 '아이들'. 2006년 AND 지원작으로 10년 동안 세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민과 아픔,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친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육아일기이다.

몽골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한 감독의 여정을 통해 조명하는 '열정 시네마', 이란의 전통 음악을 연구하는 음악가의 집념을 그린 '아민',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준비하는 청년과 정치적 갈등을 절묘하게 묶어낸 '인살라 풋볼' 등도 지원작으로 이번에 상영된다.

한편 AND지원은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다. 처음에 1편만 지원하다가 2006년부터 13편으로 대폭 확대했다. 올해 지원 감독은 지난 6월 선정을 끝냈다. 이들 지원 대상 감독들은 10월 9~13일 부산서 워크숍을 갖는다.


AND지원작 9편이나 상영
몽골·대만·필리핀 영화도 조명
국내 다큐, 질적 성장 돋봬



· 영화와 관련된 작품 풍성=올해 다큐멘터리의 특색 하나를 꼽으라면 특이하게도 영화와 관련된 작품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대충 꼽아도 5~6편을 훌쩍 넘는다. 요컨대 '열정'(감독 비얌바 사캬)은 몽골 영화의 역사에 관한 로드무비 형식의 다큐멘터리이고, 대만 관펀렁 감독의 '바람이 나를 데려다 주리라'는 동료 촬영감독 마크 리(리핀빙)의 카메라와 영화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프랑스·중국·홍콩 합작 '조니 토 총을 잡다'는 홍콩 액션의 거장 조니 토(두기봉)의 영화세계를 다뤘다. 홍콩 누아르의 전성기를 이끈 조니 토 영화의 주제의식, 스타일, 제작과정은 물론 그가 어떤 영화에 영향을 받았는지까지, 그의 입을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마닐라로의 귀환'도 필리핀 영화 역사에 관한 다큐. 필리핀 영화가 현재 세계 영화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 외국 감독, 한국 영화사 조망=이탈리아 감독(레오나르도 치니에리 롬브로소)이 한국 현대 영화사를 조망한 다큐멘터리도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임권택 박광수 이명세 이창동 박찬욱 5명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 현대 영화사를 연대기순으로 훑어가는 '한국 영화속으로의 여행'이 바로 그것. 이밖에 할리우드에서 최초로 주연을 맡은 중국계 미국인 여배우의 삶을 추적한 '애나 메이 왕'도 있다.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관객은 이런 기회를 통해 삶과 예술을 포착하는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 국내 다큐멘터리 질적 성장=한국 다큐멘터리는 이번에 모두 9편이 선보인다. 주제는 예년처럼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많다. 헌데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어느 해보다 양적 성장도 무시할 순 없지만, 올해는 질적인 성장을 확연히 보여준다"는 평가가 들리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접근이 돋보인다는 것. 그 선봉에 내세울 수 있는 게 김태일 감독의 '오월애'. 30년 전 우리 현대사인 광주민주항쟁의 의미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여전히 아픈 기억을 안고 이름없이 살아갔던 이들이 역사의 한가운데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이후 이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시민 인터뷰를 통해 카메라에 담았다. 김 감독은 한일관계를 조명한 '안녕 사요나라'라는 작품으로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을 수상했다.

기타에 관한, 기타에 의한, 기타를 위한 투쟁 이야기인 '꿈의 공장'도 수작이라는 얘기. 펜더, 깁슨, 알바레즈, 아이바네즈는 기타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꿈의 브랜드. 이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회사의 공장 폐쇄에 대항해 싸우는 일련의 과정을 그렸다. 특히 음악인들이 노동자와 연대해 투쟁하는 것이 이채롭다. 비록 사회 현실의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세상의 따뜻함을 추구한다. 음악 같은 이야기다.

영화감독, 인권활동가, 요리사, 사무직노동자란 직업을 가진 4명의 게이를 통해 이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종로의 기적'도 눈길을 끈다. 성적소수자들이 사회라는 삶에서 느끼는 고통, 고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영화다.



· 부산 배경 '잔인한 계절'=부산을 배경으로 한 '잔인한 계절'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다. 감독(박배일)도 부산 출신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우리가 남긴 흔적을 깨끗이 치워주는 부산 해운대구 환경미화원들의 이야기이다. 타인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온 평범한 우리 이웃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 예술 세계 다룬 작품 눈길=예술의 세계를 다룬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무용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독일의 세계적인 무용수 피나 바우쉬의 무용 교수법을 관찰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이 얼마나 망가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영화는 공연 리허설부터 개막공연까지의 전 과정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가부키좌-마지막 공연'은 마지막 공연을 앞둔 가부키좌의 준비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지금까지 쉽게 보이지 않았던 가부키좌의 무대 위 모습이 베일을 벗는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