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신춘문예-시]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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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명수

잘 못 꾼 꿈이 지워진 거예요 마음이 시끄럽네요 쮸릿, 쮸릿, 칫, 칫 물이 끓고 있나요?

머릿속을 지우개로 박박 지웠더니 보글보글 구름이 생겼어요 요리에 앞서 별표 3개라는 걸 잊지 마세요 너무 많이 문지르면 검게 비구름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럼 한쪽으로 쓸어버려야 하죠 쓸려나간 구름은 어디선가는 필요로 하거든요 아픈 배 문지르던 엄마의 손길로 잘못 디딘 첫발을 지워봐요 뒷걸음질치며 구름이 송골송골 피어날 테니까요



일단은 지나가는 뜬구름 낚아채 통째로 집어넣어야만 해요 낚아챌 때는 빠른 감각, 두꺼비 혀의 본능이 중요해요 토끼 기린 강아지 오빠 엄마 물고기 할머니 얼굴로 수시로 변하거든요 강아지가 싫으면 절대로 피해야 하니까요 오빠와 엄마를 요리하고 싶으면 적절할 때 낚아서 납득시킬만한 꺼리가 필요해요 잘못하면 당신이 설득 당할 테니까요 할머니에겐 안개구름 한 소반 선물해 봐요 그럼 그 속에 감춰진 추억을 하나하나 따내며 끄덕끄덕 하시겠죠 그리고는 겹겹이 포개진 뭉게구름 동강동강 썰어야 해요 구름의 남쪽, 비늘구름 잡아 당겨 살점만 떠 넣고요 다시 제 위치에 걸어놓아야 해요 요리는 늘어놓고 하면 곤란해요 제 살점을 잃은 구름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다른 형상으로 변해 떠나가버려요

하악, 그새 악어가 입 딱 벌리고 급 하강하는 줄 알았어요! 간이 철렁했죠 긴 꼬리를 끌며 지나간 뒤에 간을 보니 싱거워요 소금을 좀 더 넣어야겠네요



요리를 하다 보면 알게 되죠 구름을 절대 새총으로 쏘아 잡으면 안 돼요 조리법에 어긋나는 일이죠 빗맞기라도 하면 냄비에 구멍이 나요 조루처럼 빵빵 뚫린 구멍으로 빗줄기가 쏟아질테니까요 조리법에 의하면 그 총탄자국은 밤에만 보인다지요 그것은 인간들이 쏘아댄 빗나간 꿈이에요, 별들의 실체라고도 해요

요리가 다 됐나요? 새털구름이 하늘 가득 웃자라 피었어요 여러 빛깔로 아롱진 꽃구름이 피었어요 배추흰나비가 노루귀 꽃잎에 앉았어요 지나가던 바람 배추흰나비 날개깃에 머무네요

요리는 다 되었나요, 꽃구름?




[당선소감] 시는 내 운명의 굴레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가 생각난다. 필립은 장애인으로서, 고아라는 환경으로, 예술적 고뇌 때문에, 여성에 대한 집념 등 운명적으로 쓰인 굴레를 힘겹게 극복해간다.

내 삶도 어찌보면 필립과 닮아 있다. 어린 날 부모님을 여의고 우리 가족은 폭탄 맞은 듯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파편 조각은 어느 수집가에 의해 귀하게 쓰임을 받았고 그 배려로 내 삶은 훈훈하게 생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필립과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조금 늦게 시를 접했다. 시는 오랫동안 내 삶의 밤하늘이었고 별이었고 꿈이었다. 이런 내게 날아든 당선 소식은 내 생의 어떤 소식보다 날 기쁘고 두렵게 했다. 운명처럼 조이던 굴레가 어쩐지 그리 무겁고 힘겹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제 나는 내 운명의 굴레보다 더 나를 옥죌 시의 굴레를 기껍게 쓰려 하기 때문이다.

시에 참신한 상상과 메타포의 날개를 달아주신 중앙대 예술대학원 김영남 선생님, 서투른 날갯짓을 소중하게 보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부산일보사에도 감사드립니다. 감사할 분은 많으나 가슴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별뫼 친구들, 정동진 회원님들과도 이 기쁨 밤새도록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심명수 / 1966년 충남 금산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인천은광학교 근무


정현종 시인
정호승 시인
나희덕 시인

[심사평] 상상력 증폭시키는 힘과 감각

시 부문 투고자들 중에서 본격적인 논의 대상으로 압축된 것은 강가영, 김승원, 최류, 김경덕, 심명수 등이었다. 이 다섯 사람의 작품은 각각 개성적인 목소리와 일정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다.

강가영의 섬세한 조형력, 김승원의 현실에 밀착한 시선과 절제된 표현, 최류의 독특한 존재론적 사유 등은 모두 소중한 것이었지만, 당선작이 되기에는 다소 인상이 약했다.

마지막으로 김경덕의 '포쇄도'와 심명수의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를 두고 적지 않게 고심했다. 김경덕의 시가 고전적 기품을 지니면서도 언어를 탄력있게 운용할 줄 알고 시의 묘미를 만들어내는 솜씨를 보여준다면, 심명수의 시는 착상이 재미있고 상상력을 증폭시켜 나가는 힘과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대조적인 세계 중에서 심사위원들은 결국 좀더 젊고 신선한 목소리를 선택했다. 심명수의 투고작 10편이 두루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 믿음이 갔다.

당선작인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는 상상력의 요리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이미지들의 변주를 보여준다. 이런 분출이 다소 소란스럽고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이탈과 생성의 순간은 즐거운 몽상으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낚아챌 때는 빠른 감각, 두꺼비 혀의 본능이 중요해요"라는 구절처럼 감각의 촉수가 예민하고 날렵한 이 신인이 앞으로 차려낼 풍성한 시의 밥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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