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필사본의 원작 역사소설 발견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남당 박창화 유고 정리하다 '잔본' 찾아

화랑세기(花郞世紀) 필사본의 원작 역사소설(?)이 발견됐다.

박남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지난 2001년 남당 박창화의 유고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 보관해 왔다. 최근 그 유고를 정리 검토하다 눈에 번쩍 띄는 자료를 만났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습작으로 보이는 역사소설인 '화랑세기 잔본(殘本·사진)'이 있었다. 또 그 안에는 향가 1수도 수록돼 있었다. 화랑세기 잔본은 1930년에 만들어졌으니 필사본(1930~40년대)보다는 앞선다.

박 연구관은 "화랑세기 잔본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사를 편년 형식으로 나열하고 관련 자료의 상관관계를 역으로 추적해 논리적인 고리를 만들고, 필요할 때 인물과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소설이란 것.

잔본에 수록된 향가 '백해상백파가'의 표현어법이나 단어도 근대어에 가깝다는 게 박 연구관의 주장이다.

문제는 화랑세기 필사본의 내용과 이번에 발견된 잔본의 내용이 큰 줄기에서 다르지 않다는 사실. 잔본의 내용이나 구성이 습작 단계의 것으로 필사본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필사본도 필시 소설일 거란 주장이 당연히 뒤따른다. 또 다른 결정적인 근거 중 하나가 김흠돌의 난을 진압한 장수의 이름이 확 달라졌다는 점. 이번에 발견된 화랑세기 잔본에선 김인문(문무왕의 동생)의 아들인 배장공이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국선(國仙)의 위치에 올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필사본에는 배장공의 이름이 쏙 빠지고 그 자리에 오기공이 들어간다. 오기공은 잔본에선 그저 배장공의 휘하 장수로 나올 뿐인데 필사본에서는 화랑세기의 저자인 김대문의 아버지로 설정돼 주요 배역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물론 배장공이나 오기공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들이다. 박 연구관은 "소설이 필사본 화랑세기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역사서처럼 보이려고 김대문의 아버지라고 가상으로 설정해 끌어들인 게 아닌가 한다"고 추정했다.

박 연구관은 지난 13일 동국사학회 학술대회에서 '신발견 박창화 화랑세기 잔본과 향가 1수'라는 논문을 통해 이런 주장을 발표했다.

이상헌기자 ttong@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