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서면역 문화마당]음악회서 마술쇼까지 '거리공연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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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서면역서 열린 해운대 색소폰 동네의 연주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김병집기자 bjk@

종종걸음과 무표정한 시선들이 바쁘게 교차하는 회색빛 지하철 공간.

지나가던 사람들은 뜻밖의 색소폰 소리가 지하철 공간을 타고

휘감아나오자 바쁜 걸음을 재촉하다 힐끔힐끔 쳐다 본다.

지팡이를 짚고 있던 할아버지는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남아있는

의자에 앉아 본격적으로 공연을 관람할 태세다.

지난 10일 오후 지하철 서면역 문화마당.

이날 출연자는 해운대 색소폰 동네.

이들은 '빗속의 여인' '오브 더 레인 보우' '베사메무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색소폰의 감미로움을 전해줬다.

중간 중간 최춘광의 마술쇼와 아줌마 가수들인 소리바다의

협연무대가 삽입됐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장단 발장단을 해가며 박자를 맞추는 중년 남자,마치 자신이 연주를 하듯 심각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재빨리 놀리며 음악에 맞춰 악기 연주 흉내를 내는 할아버지,앙증맞게 박수를 치는 맨 앞좌석에 앉은 아이까지 객석은 점차 무대에 빠져들어갔다.

객석과 무대가 따로 없는 무대가 바로 이곳. 그래서일까. 공연에 앞서 마이크를 잡은 부산레일아트 채광수 대표는 '지하철 문화마당은 시민 여러분들의 무대입니다. 시민들이 연출하고 기획하고 운영하는 무대입니다.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가 훌륭한 공연자들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넨다.

지난 2001년 8월 첫 상설공연을 시작으로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하철 서면역은 이렇게 문화가 흐르는 공간으로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 기억돼 가고 있다.

지하철예술단 부산레일아트가 2004년부터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한 단계 뛰어오른 무대를 만든다.

지난해 89건의 공연을 올렸던 부산레일아트가 올해 계획한 공연은 212건. 지난해 월 2차례 정기공연을 했던 서면역에선 매주 토요일 오후,격주 금요일 오후 공연으로 월 6회의 정기공연을 올린다. 정기공연의 경우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해미르예술단의 사물놀이와 같이 공연을 이끌어 갈 주체를 미리 정해 놓았다.

여기에 기획공연까지 합해 한 해 110회의 공연이 서면역에서 펼쳐진다. 또 철도청 부산역과 지하철 남포동역을 비롯해 부산 전역으로 거리공연을 확대시켜 나갈 계획.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올해부터는 기획 개념을 도입,질적 성숙도 꾀한다.

지하철 서면역 경우 매월 주제가 있는 음악회를 무대에 올린다. 그동안 이것 저것 많이 보여주는 데만 신경을 썼다면 이젠 주제를 정해 관객이나 출연자 모두 준비를 하고 무대를 만들 수 있게 하기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1월 지하철 신년 음악회,2월 청소년예술제,3월 지하철 오페라,4월 부활절 칸타타,5월 부산국악효도예술제,6월 부산성악대축제,7월 지하철 섬머 페스티벌,8월 안데스음악 페스티벌과 부산무술축제,9월 부산군악연주회,10월 40대 예술페스티벌,11월 고3학생들을 위한 한마당 축제,12월 성탄축하공연 등. 여기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시사이 뉴칸치난 잉카엠파이어 등 안데스민속음악단체와 뉴욕 지하철역에서 공연하는 언더뉴욕팀 초청도 추진 중이다. 지하철 서면역과 연계해 3월부터는 옛 태화쇼핑 맞은편 서면1번가 거리에서 매월 주제가 있는 문화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부산레일아트의 이런 구상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데는 자발적인 시민참여가 뒤를 받치고 있다. '처음엔 산만하기도 하고 뒤에서 지나가던 행인이 시끄럽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요샌 이런 사람이 생기면 객석에서 먼저 난리가 난다'는게 채 대표의 말.

하지만 어설프게 공연을 준비했다가는 망신당한다. 작정을 하고 찾아가야 하는 공연장과는 달리 연주가 좋으면 뒷자리에 있다가도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의자에 눌러앉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객석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감동은 객석의 반응으로 이어진다. 잔잔한 감동에 이끌려 손에 쥐고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을 아낌없이 건네준다. 무더운 여름 비오는 듯 흘러내리는 땀을 식히라며 건네주는 부채가 그러하다. '태어나서 이런 공연은 처음 봤다'며 공연자의 손을 꼭잡은 할머니는 꼬깃꼬깃한 1만원짜리 지폐를 수고했다며 손에 쥐여 주고 갔다. 남루한 옷차림의 한 노동자는 '공연 잘 봤다'고,그날 하루 번 일당이라며 5만원이 담긴 노란 봉투를 건네주기도 했다.

이날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의자를 한 자리에 모으고 뒤처리를 도왔다. 객석과 무대가 따로 없는 지하철 문화공간은 삶의 다양한 스케치가 가능한 역동적인 무대다. 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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