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살고 싶다]<5> 망양로 - 서민들의 스카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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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이 쌓인 주택에 서민 삶 '고스란히'

망양로는 서민의 스카이웨이다. 굽은 길은 '느림의 미학'이 담긴 우리 옛길같다. 경사지는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친근한 풍경 그대로다. 바다를 껴안는 조망이 시원하고 아름다워 누구나 시인이 되게 하는 길. 그 길의 향취가 재개발에 의해 지워지고 있는데, . 사진= 건축사진가 이인미

부산항을 한눈에 바라보며 달리는

망양로는 구 교통부 교차로에서

동대신동에 이르는

길이 9.7㎞,폭 12~20m의 도로로

일명 산복도로라 불린다.

망양로는 피난 시절

산비탈 주변의 판자촌을 연결하는

도로였지만

지금은 그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아직도 여기에는

서민들의 진한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 망향의 아픔을 달래며 '옹기종기'

'고등어가 왔습니다. 갈치,정어리가 왔습니다… 잘 익은 토마토가 있습니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단감이 왔습니다.' 상인들은 리어카에 제철을 맞아 무르익은 생선이랑 과일들을 싣고 비탈진 길을 오르내리며 서민들에게 계절을 알렸다.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부산시민은 피난민으로 살았다. 과거 '떠돌이 도시'로 불리웠던 부산은 정든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였다.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인구 40만 정도로 계획하였던 부산은 8·15해방과 함께 국외에서 귀향하던 중 정착한 사람들,6·25전쟁 피난민으로 뿌리를 내린 사람들,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이방인과 외래인이 모여들어 1965년에는 인구 100만을 훌쩍 넘어섰다.

주거지는 급속히 불어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고,그로 인해 서민들은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모여 살기 시작하였다. 고향을 떠나온 이들은 생활터전이 내려다보이는 경사지에 판잣집을 짓고 동네를 이루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산비탈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오르막길은 힘들었지만 발 아래로 펼쳐지는 부산항의 야경은 현실의 시름을 잊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실향민들이 제2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던 영주동,수정동,좌천동,범일동 등 대부분의 주거지는 어디에서나 부산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서민들의 주거지를 연결하고 있는 망양로는 지형상 특징으로 인하여 구비구비 특유의 조망권을 가지고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망양로의 풍경은 때로는 마을의 골목길처럼,때로는 시원하게 뻗어있는 신작로처럼 보이기도 하고,대청공원 인근에 이르면 부산항의 전경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이 길은 재일한국인 모국 방문단이 왔을 때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꼭 찾았다고 한다. 부산항까지 멀리 트인 망양로의 시야와 풍경은 망향의 아픔을 달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 삶의 풍경이 있는 스카이웨이

우리는 천혜의 경치를 보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길을 스카이웨이라 부른다. 한국에서 스카이웨이의 시초는 북악스카이웨이일 것이다. 북악산 능선을 따라 서울도심의 경관이 한 눈에 들어오고,멀리는 남산과 한강이,뒤쪽으로는 북한산의 장관을 조망할 수 있는 북악스카이웨이 주위에는 고급주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에 북악스카이웨이가 있다면 부산에는 망양로가 있다. 망양로에 오르면 부산의 도심과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뒤쪽으로 이어지는 대청공원의 푸른 숲을 조망할 수 있다. 이처럼 망양로 주위에는 천혜의 경치는 있어도 스카이웨이에 있을 법한 고급 주택들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을 뿐이다.

부산의 도심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지만 기존의 도시질서가 비켜가 버린 곳. 이들로부터 내몰린 힘겨운 삶이 존재하는 곳이 망양로이다. 하지만 여기는 집 앞에 내놓은 작은 화분에서,작은 평상에 모여 앉은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서 서민들의 진한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리적 조건과 풍경만으로 본다면 망양로는 세계적인 스카이웨이와 견줄 훌륭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근대의 역사는 망양로를 서민들을 위한 스카이웨이로 남겨두었다.

일반적인 스카이웨이가 자동차를 타고 가며 풍경을 즐기는 도로라면,굳이 차를 타지 않고도 걸으면서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서민들을 위한 스카이웨이는 아닐까. 최근 보행자를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널리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동차 우선 도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왕복 2차선인 망양로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차도가 차지하고 남은 귀퉁이 부분에 노란 선을 그어 불과 너비 50여㎝의 공간을 인도로 남겨두고 있다. 때문에 이 길을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려면 차들과의 전쟁을 벌여야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도로를 걸어가면 풍경을 즐기기는 커녕 차량의 질주 속에 잔뜩 주눅이 든 채 걸어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 누구나 아름다운 길에 서면 시인이 된다

부산의 풍경을 체험하는 가장 일상적인 방법은 자동차를 몰고 달려보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시선은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구체적인 터전을 살펴보기 보다는 남 보다 먼저 가기 위해,추월 당하지 않기 위한 기호화된 도로와 표지판을 바라 볼 뿐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길을 거닐며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길을 걷고,산책하며 철학을 강의하고,옛 사람들은 길을 걸어가며 삶과 자연의 이치를 헤아렸던 것이다.

일찍이 우리의 선조들은 길을 걷는다는 것이 단순히 공간적 이동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선조들이 만든 길들은 적당히 굽어있고 길을 걸으며 생각에 감길 수 있는 풍경과 쉼터를 만들어 왔었다. 우리가 망양로에서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이처럼 적당한 속도로 달릴 수 밖에 없게 만들어진 굽은 길과 경사,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망양로에 불기 시작한 재개발의 붐으로 인해 진한 삶의 풍경들이 하나둘씩 지워지고 있다. 새롭게 재건축되는 대규모 아파트들은 마치 도심의 여느 도로에서처럼 빌딩의 숲으로 시선을 차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거부하고 남의 시선과의 접촉을 외면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여기에는 경제 논리에 의해 지역을 이윤추구의 장으로만 생각하는 자본의 관점만 있을 뿐 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보는 관점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경제에 우리의 삶이 이끌리게 되면서 그나마 망양로에 존재했던 양보와 공유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철저히 사유화된 공간으로 변화하면서,부산의 자랑거리이자 공동자산이 되어야 할 망양로의 풍경은 이기적인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이들 경제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는 하지만 진정 망양로가 서민들의 스카이웨이로 남기 위해서는 속도에 의한 개발 보다는 절제에 의한 공유의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미래를 위한 장미빛 청사진 혹은 그저 과거를 회상시키는 기념비가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 수 있고,때로는 시름에 잠기면서 산책을 즐기는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회복되고 보존될 때 망양로는 진정한 서민들의 스카이웨이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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