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통영에 이런 맛집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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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을 맞아 도심의 도로가 한산해졌다. 대신 해수욕장은 피서객들로 연일 만원이다. 그 사람들처럼 무작정 떠나서 낯선 도시에서 외지인이 되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2일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경남 통영으로 '맛기행'을 떠났다. 통영의 풍부한 수산자원은 통영의 맛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통영에는 지역의 독특한 술문화가 만들어 낸 '다찌집'을 비롯해 장어를 갈아서 만든 시락국밥, 충무김밥, 도다리쑥국, 메기탕, 멸치회, 나물비빔밥, '우짜', 꿀빵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흉내내지 못하는 통영만의 독특한 음식문화 기행에 나섰다.


·통영의 독특한 술문화 '다찌집'

다찌집을 모른다면 진정한 술꾼이라고 할 수 없겠다. 소주 1병에 1만원으로 비싸지만 안주가 한상 가득히 나온다. 가히 '술꾼들의 천국'인 셈이다. 통영시 곽동실 홍보행정담당은 "다찌집은 술을 많이 마시는 통영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특유의 술 문화이다. 외지 사람들이 가서 술은 별로 안 마시고 안주만 많이 달라고 하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외지에서 취재하러 가도 별로 환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어허, 사람을 어떻게 보고…).

통영의 다찌집으로는 울산다찌, 명촌식당을 비롯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집들이 꽤 있다. 그 중 통영 사람들이 잘 간다는 북신동 '한바다(055-643-7010)' 집에 가 보았다. 세 사람이 가서 일단 "소주 1병, 맥주 2병이요" 했더니 주문이 잘못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문은 "소주 3병, 맥주 5병(각각 4만원)"이라는 식으로 통 크게 해야 한다.

통영 사람 2명이 다찌집에 오면 평균 소주 5병, 3∼4명이 오면 10병 가까이 마시고 간다. 이런 방식이 싫다면 기본 10만원 상에 소주와 맥주가 3천원씩 추가되는 '스페셜'로 시켜도 된다. 술 주문받는 방식이 독특하다. 통영에 왔으면 통영의 법을 따를 수밖에…. 얼음통에 담아온 술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기다리던 술상이 들어온다. 문어, 서대, 새우, 고둥, 옥수수, 완두콩, 호박, 톳국, 파전, 열무김치, 나물비빔밥…. 그 종류가 많기도 하다. 술상에 비빔밥이 안주로 오른 것은 처음 보았다. 두부, 미역, 무, 박, 가지, 고사리, 톳나물, 탕국이 골고루 들었다. 홍합과 된장을 넣어 만들었다는 청각 무침. 그 구수한 맛에 자꾸 손이 나간다. 얼마나 먹었을까? 눈 같이 하얀 게장이 들어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또 다시 볼락회가 들어온다. 일행 중 누군가가 그걸 보고 "볼락은 눈이 예쁘다"고 했던 것 같다. 호래기를 비롯해 조개와 고둥류가 또 들어왔다. 상에 오른 고둥이 무슨 고둥이냐고 묻자, 어느 통영 사람이 맵싸하니까 '맵싸고둥'이라고 답한다. 통영의 술 문화는 이런 식이다. 눈볼대, 볼락 구이도 맛이 있고, 갈치 내장 젓갈도 맛이 있다. 일식집에서 진수성찬을 먹을 때는 헛배만 불렀는데 여기서는 먹는 게 편안하고 행복하다.

매운탕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김미숙(38) 대표는 "매상이 10만원이 넘으면 뭐든지 나옵니다. 이 시간부터 원하는 대로 해줍니다"고 한다. 이렇게 통영의 밤이 깊어 갔다.

·뱃사람들을 위한 '충무김밥'

일반 김밥과 다른 충무김밥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통영에서도 처음에는 일반 김밥을 팔았다. 하지만 유난히 햇살이 따가운 통영에서 김밥은 금방 쉬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밥과 반찬을 분리해 팔기 시작했는데 이게 충무김밥의 유래가 되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충무김밥은 통영 일대에서 많이 잡힌 갑오징어를 사용해 더욱 맛이 좋았다. 무김치도 젓갈을 듬뿍 넣어 만들었다. 충무김밥이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게 된 데는 충무김밥을 잔뜩 들고 '국풍81'에 참가한 항남동 놀이마당 앞의 '원조 뚱보 할매'의 공이 크다고 한다.

이 집은 유명세 탓에 지금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통영 사람들은 한일, 동진, 제일 김밥집의 충무김밥을 즐긴다. 한 택시기사는 "원조집에는 가만히 있어도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들지만 나머지 집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춧가루 하나라도 더 넣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일리가 있다.

항남동 문화마당 농구골대 앞의 한일김밥집(055-645-2647) 에 들어가 보았다. 30년 전통의 한일김밥집은 5층 건물의 3층까지를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 본점 외에도 큰 아들은 북신동에서 북신점, 작은 아들은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죽림점을 하고 있단다. 본점은 주인 김향자(60)씨가 딸과 함께 경영하고 있다. 김씨에게 몇남몇녀를 두었냐고 물으니 하도 바빠서인지 1남2녀라고 말했다가 2남1녀라고 수정해준다. 김밥으로 빌딩을 올린 집이다.

·우동과 짜장이 한 그릇에 '우짜'

통영에서 또 하나, 꼭 한번 먹어봐야하는 음식이 '우짜'이다. 우짜는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국물을 함께 먹고 싶다는 욕망으로 탄생한 음식이다. 우짜는 40년의 전통을 지녔다.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어려운 형편일 때 먹었던 음식이라는데 이게 요즘 인기가 있다. 통영에는 우짜집이 두 곳 있다. 24시간 영업으로 통영의 술꾼과 여행객들에게 인기 높다는 '항남우짜'는 이날 아쉽게도 휴가를 간다고 문을 닫았다.

서호시장 안에 있는 할매우짜(055-644-9867)에 들어갔다. 10명이 앉기도 어려운 가게이지만 어떻게 알고 각지에서 찾아온단다.

한 그릇에 2천원하는 우짜를 입에 넣었다. 그런데 이 맛이 참 별미이다. 직무유기 같지만 이 맛은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우짜 맛이 두고두고 생각이 나 어떤 사람이 중국집에 가서 짜장과 우동을 한 번 섞어 먹어보니 영 맛이 아니었더란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않는 맛이다.

일박이일간 통영에서 열심히 먹으러 다녔다. 하지만 아직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더 많다. 통영은 맛기행하기 좋은 도시다. 통영 사람들은 참 좋겠다.

글·사진=박종호기자 nleader@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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