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e메일 인터뷰] 독일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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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생태 고려한 미래형 도시 설계 필요'

그는 아버지를 빼닮았다. 이름도 직업도 재능도 아버지 것을 다 물려받았다. 두 사람 사진을 흩어 놓으면 누가 누구인지를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푸른 눈에 회색빛 머리카락… 얼굴 형태까지 너무 닮았다. 독일 건축의 자존심인 알베르트 슈페어(73·Albert Speer)를 '접속 지구촌 e메일 인터뷰'에 초청했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솔직히 그보다 그의 아버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부친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아끼던 인물이었다. 제3제국(독일제국) 설계자로 종전 때까지 나치 군수장관을 지냈다. 결국 나치 패망과 함께 전범재판에서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1966년 만기 출소한 뒤 1981년 뇌출혈로 숨졌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세상의 관심을 받은 이유는 히틀러의 최측근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괴링과 히믈러 등과 달리 나치 장관 출신으로서는 유일하게 교수형을 면했다는 사실이 더 큰 관심을 모았고 그의 '뛰어난' 건축이 그를 못 잊게 했다.

아버지와 같은 이름의 알베르트 슈페어는 그런 아버지의 개인사를 지켜보면서 자랐다. 전쟁범죄자를 아버지로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대목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질문은 그의 이름에서 시작됐다.

"우리 집안은 장남이 아버지 이름을 이어받는 전통이 있습니다. 저와 아버지뿐 아니라 할아버지(알베르트 프리드리히 슈페어)도 같은 이름을 썼죠." 할아버지도 당대 유명한 건축가였다. 물론 그의 건축 가계는 더 길었다. 증조 할아버지인 베르톨드 슈페어(Bertold Speer)도 건축가였다고 그는 말했다.

계보는 그에게도 이어졌고 그는 지금 독일 최고의 건축가로 우뚝 서 있다. 특히 도시설계 부문에서는 세계 건축계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그의 이름을 딴 'AS&P(알베르트 슈페어 & 파트너)'사도 세계 최고의 건축업체 중 하나다.

"프랑크푸르트시의 도시설계 자문을 25년째 맡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박물관 거리와 고층 건축물 경관지구 조성 공사도 죄다 그의 작품이었다고 그는 답했다.

"최근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외교도시와 중국 상하이 인근의 안팅 자동차 도시설계도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은 인구 50만명의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예나고아(yenagoa) 지역에서 150평방㎞의 도시경관 공사에 참여 중입니다."

그가 유럽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유럽에는 더이상 대규모 도시계획을 실시할 만한 장소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는 다르죠. 특히 중국은 도시 설계 부문에서 환상적인 시장입니다." 중국에 대해 좀 더 많은 의견을 듣고 싶었다. "중국은 도전하는 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중국 지린성의 창춘(長春)만해도 120㎢의 도시설계가 이뤄졌다고 했다. "유럽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는 중국에서의 성공에 대해 '지속 가능한 도시설계' 때문이라고 했다. "환경과 생태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중국의 미래를 위해 환경과 생태,에너지 절약,개인난방 등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 그 결과를 창춘의 도시설계에 접목했죠." 창춘은 지금 중국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미래형 도시다.

그런 까닭에 그는 10여년 전부터 중국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공도 많이 들였다. 올 초에는 아예 상하이에 지사를 개설했다. "중국은 올해 창춘에서 동계아시안게임을 가졌고 내년에는 베이징에서 올림픽을 개최합니다. 또 오는 2010년에는 상하이세계박람회가 열립니다."

건축가로서 가장 인상깊은 도시를 물었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바로셀로나가 첫손에 꼽힙니다. 1900년께 생겨난 도시인데 격자형 시스템 위에 설립된 보석 같은 건축 도시죠."

부산과 서울에 대해서도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신 국제도시화에 대한 감상을 털어놨다. "지금의 국제도시는 다 비슷합니다. 서로 닮아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죠. 주방이나 욕실은 아예 전 세계가 다 똑같습니다." 지적은 자연스럽게 개성있는 국제도시로 옮겨갔다. "사람처럼 도시도 개성이 필요합니다." 뉴욕이 좋다고 다 뉴욕처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부산도,서울도 나름대로 색깔을 지닌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질문은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이어졌다. 베를린은 히틀러의 지시 아래 그의 부친이 구상한 미래형 계획도시였다. 하지만 그동안 분단과 통일을 거쳤고 그런 과정에서의 변화가 궁금했다. 한반도 통일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독일 통일은 매우 갑작스러웠습니다. 독일 역시 이에 대해 온전히 준비하지 못했죠. 특히 동독은 지금도 엄청난 자금이 지원되고 있지만 그곳의 주민들은 꾸준히 서독지역으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향후 독일의 도시계획도 인구 이동에 따른 변화가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시 어린 시절을 캐물었다. 건축가가 되지 않았으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말을 많이 더듬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갖고 싶었죠. 그림은 굳이 말이 필요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이 됐다. "너무 바빠서 그림은 그리지 못하는 대신 고객이나 직원을 상대로 매일 엄청난 논쟁을 벌입니다."

그는 한때 고등학교를 중퇴한 불량(?)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강압적인 것을 잘 견뎌내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외할아버지 밑에서 목수 일을 배우다 뮌헨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그때 배운 목수 일이 건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세상에 정말 쓸모없는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지금 100명의 건축사를 거느린 독일 최대의 건축기업 창업주다. 백현충기자 choong@busanilbo.com

독일어 번역=김승남 일신설계 이사


# 알베르트 슈페어

△1934년 독일 베를린 출생
△건축가 겸 도시계획가
△1972년 카이저스라우테른대학 교수
△1984년 AS&P사 설립
△2000년 하노버 박람회 디자인 책임
△중국 상하이 국제 자동차 도시 및 베이징 올림픽 단지 디자인 총책임
△홈페이지 www.as-p.de

※부친인 알베르트 슈페어가 쓴 회고록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서'는 지난 1월 '마티'에 의해 국내 첫 번역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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