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풍광에 푹 빠진 10년 세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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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 하지만 남들처럼 배흘림 기둥 때문은 아니었다.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된 지점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매료됐기 때문이라며 그는 웃었다. 그 풍경이 바로 화엄세상을 닮았다나!

한정갑(51) 씨. 그는 불교계에서 괴짜로 통한다. 어릴 때부터 불교를 접했지만 정작 머리를 깎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사실 더 열심히 공부한 것은 세속법이 아니라 불법이었다. 불교를 지키려다 구속됐고 사찰을 기초부터 깨닫고 싶다며 지난 10년 동안 전국 사찰을 순례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명찰 답사' 저자 한정갑 씨
10·27 법난 규탄 첫 집회로 구속도


이달 초 부산에서 출간된 '대한민국 명찰답사 33'은 그런 발품과 오랜 탐문의 결과였다. "수도 없이 다녔지요. 아마 전국의 사찰 40∼50개를 4∼5차례 이상 찾았을 걸요. 너무 행복한 일정이었어요." 어떤 날은 사찰 풍광에 푹 빠져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다 결국 차 속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책은 사찰 답사에 초점을 뒀다. 어떤 절은 이래서 좋고, 또 어떤 절은 저래서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 관점이 기존의 사찰답사 서적과 많이 달랐다. 건축학이나 미술사적인 시선이 아니라 불교 그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사찰의 창건 배경에 대한 해설이 주류를 이뤘다. 이 절이 왜 태어났을까, 하는 것이 그의 탐문이었다.

"범어사는 지금 선찰 대본산으로 홍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건 배경을 보면 선종보다 화엄종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창건 당시 국가의 변방에 위치해 왜구 침략을 막는 법력이 가장 중시됐던 겁니다." 그는 범어사는 사천왕을 모신 뒤 화엄법회를 자주 열었다며 지금처럼 선방을 지나치게 키운 것은 초심을 잃은 행위라고 지적했다.

"범어사뿐만이 아닙니다. 국내 대부분 사찰이 획일화되고 있습니다. 안타깝지요." 그는 창건 배경을 더듬어 다양한 콘텐츠로 불교문화를 중흥시키는 것이 불교 발전에도 더 도움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불교철학을 공부하던 여자 선생님이 좋았어요." 고교와 대학에서는 불교학생회를 주도했다. 민중불교에 눈을 뜬 것도 그 무렵이었다. "독재정권에 불교가 농락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대요."

그는 서울로 올라가 100여 명의 학생들을 규합한 뒤 조계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10·27법난을 규탄하는 전국 첫 집회였다.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었어요. 결국 구속됐지요."

옥고를 치른 뒤 그는 불교문화운동에 전념했다. "정치는 체제를 바꿀 수 있지만 정작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문화라는 생각이 들대요." 풍물패, 조계종 청소년단체 '파라미타청소년협회', 포교사단, 중앙신도회 등에서 실무자 역할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지금 귀향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 부산에 지인들과 함께 '생활문화연구소'도 차렸다. "이제 고향에서 생활 속의 불교문화운동을 펼치고 싶어요."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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