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다리 추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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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건설 한국전쟁도 '거뜬' '매미'로 붕괴 연말께 완전 철거

올 연말 완전철거되는 구포다리가 일부 상판과 교각만 남은 채 철거가 진행 중이다. 구포다리 왼쪽으로 새로 들어선 구포대교가 보인다. 김진성 기자

1932년 1월 구포다리 위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시 부산 구포면과 김해군 대저면 전주민이 다리위에서 줄다리기 시합을 위해 한데 모였다. "지는쪽이 다리 난간의 조명등 전기료를 내는 것입니다."

결과는 구포면 주민들의 승리. 하지만 패배한 김해지역 청년들이 몰려와 조명등을 부수는 바람에 수년동안 이 다리는 밤에 조명등 하나 없었다.

1932년 구포다리 개설을 두고 지역경제 쇠퇴를 우려했던 부산 구포면 주민들과 다리 개설에 적극적이던 당시 김해군 대저면 주민들이 조명등 전기료를 부담을 두고 한판 승부가 벌어졌다는 구포다리의 일화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놓여진 구포다리가 주민들의 애환을 간직한 채 '76세'의 일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26일 부산시 건설안전시험사업소와 북구청에 따르면 지난 2006년 6월부터 시작된 길이 1천60m, 너비 9.15m의 구포다리의 상판철거작업이 현재 11개의 상단 중 2개만을 남기고 있다.

시험사업소 측은 다음달 16일께 남은 2개의 상판을 완전 철거하고, 교각 등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철거업체를 선정해 올 연말 최종 철거키로 했다고 밝혔다.

구포다리의 철거 논의는 2003년 태풍 '매미' 때 교각 1곳과 상판 3곳이 무너져내리면서 불거졌다. 그 해 '사용금지 조치'가 취해졌고, 2004년 7월 정밀안전진단 끝에 E급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됐다.

이후 2005년 9월 교각 2곳과 상판 2곳이 추가로 붕괴되면서 한달 뒤 구포교 전면철거를 위한 실시설계 용역이 시행돼 현재에 이르렀다.

구포다리 최종 철거를 앞두고 향토사학자들은 적잖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당시 구포다리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였고, 당시 부산과 경남을 잇는 유일한 교량이었다. 특히 이 다리는 한국전쟁때 최대 고비였던 낙동강 전투때 부산항에서 내려진 연합군의 탱크와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데 일등공신이었다는 것.

부산 낙동문화원 백이성(62) 원장은 "구포다리에서 구포역까지의 번지는 대부분 1060-1, 1060-2 등을 쓰고 있는데 이는 구포다리의 길이를 딴 것일 정도로 구포다리는 부산시민들에게 많은 애환이 남아있다"며 "사라지는 구포다리를 기념하기 위해 구포지하철 역사내에 구포다리 모형과 상설 사진 전시장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예산부족 등으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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