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함께 행복 찾기] 이름이 뭐예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영일 신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아이돌 가수 그룹의 노래 중에 '이름이 뭐예요?'라는 가사가 나온다. 노래 전체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름이 뭐예요?'라는 구절이 유독 내 귀에 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평범한 일상 대화를 노랫말로 사용하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난 그 가사를 통해 '이름'이라는 평범한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게 된 어느 날의 일화가 생각났다.

대학 1학년으로 입학한 한 학생과 면담을 갖기로 한 날이었다. 약간은 긴장된 표정으로 연구실에 들어 온 학생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자 학생은 너무나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학생의 말은 놀람을 지나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학생은 교수와 개별 면담을 한다는 것이 너무 흥분돼 전날 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그 학생은 성적 외에 개인적인 고민을 가지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경험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교수와 가깝게 마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너무나 기대돼 잠을 쉽게 이루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름을 알고 불러 줄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이의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은
이름에 담긴 개성을 키워가는 것


"이 학생의 이야기가 정말일까.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극단적 과장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뒤로 하며 좀 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러나 학생의 생각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분명했다. 학교에서의 모든 '관계와 의미'는 성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이 학생의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전부였다.

물론 어린 한 학생의 예외적인 경험을 확대 해석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교사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만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규정된 성적에 의해 줄 세우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이름의 의미를 점점 잃어버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 중심의 사회에서는 '자신만의 개성'이 아니라, 규정된 능력을 가진 '누구나'가 필요할 뿐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언제든 동일한 능력을 가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부속품과 같은 존재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름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성적이나 기능이 아니라 그 사람 고유의 외모, 성격을 머리에 떠 올리며, 다른 사람과 구별한다.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곧 그 사람만의 개성과 특성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이름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 이름을 가진 사람은 결코 사회의 한 부속품으로 남아 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이름과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특성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과 끼를 살리게 하는 교육은 자신의 이름에 담긴 개성을 발견하고, 키워 나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이다. 이제부터라도 "너는 몇 등이니?"가 아니라 "너의 이름은 뭐니?"라고 묻고 답하는 학교와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