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톡톡] 1990년대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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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즐겨 본다. 1997년 당시 부산의 고등학생들 이야기다. '아버지의 복고가 세시봉이라면 나의 복고는 H.O.T'라고 회상하는 2012년 주인공의 독백으로 드라마는 시작한다. 배우 안재욱을 스타덤에 올렸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당시 유행하던 패션 브랜드들, 천리안·하이텔 등 통신 채팅…, 극 속에 등장하는 1990년대 코드를 기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 해운대의 한 클럽엘 갔다. 그 나이(30대 후반이다. 더 이상 중반이라 우길 수 없는)에 무슨 클럽이냐고? 그런데 그 클럽은 좀 특별하다. 1990년대의 국내 가요만을 틀어주는 30대를 위한 클럽. R.ef, 듀스, 클론, 영턱스클럽 등 1990년대를 휩쓴 뮤지션들의 댄스곡이 흐르면 30대 남녀가 무대를 휩쓴다. 다들 십수 년이 지난 안무를 어떻게 그리 잘 기억하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러고 보면 올해 들어 '1990년대' 문화 코드가 부쩍 눈에 띈다. 지금까진, 2000년 이후의 것에 비해 '노티'가 났고, 그렇다고 386, 7080세대로 대변되는 1980년대의 것처럼 '복고'라는 명함을 내밀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언저리'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핫 아이콘'으로 뜬 것이다.

그런데,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2000년대에 1980년대 코드가 '추억'을 자극했던 것처럼,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 역할을 1990년대 코드가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리라. 기자의 청춘기 시절 코드가 이제 '기성세대가 추억을 곱씹기에 딱 적당히 숙성된 안줏거리'가 된 셈이다. 그 말은 곧 기자가 기성세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긴 무엇인들 세월을 비켜 갈까. IMF 구제금융이 불러온 취업 한파 속, 도서관 자리 잡기가 아닌 메이저리그 중계 시청으로 기자의 새벽잠을 설치게 했던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도 2012년 한국에선 5승 9패를 기록하며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기자에게 박찬호 선수는 여전히 '영웅'이다. 그리고, 비록 20년 전 꿈꿨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시절의 꿈을 무모하게 다시 한번 꿀 것도 아니지만, 그 꿈은 여전히 소중하다. '기성세대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곱씹기에 딱 적당한 안줏거리'처럼.

오늘은 집에 가 '동물원'의 노래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나 검색해 봐야겠다.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아.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는 걸.'

김종열 기자 bell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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