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이성·부모가 심리 조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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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심리 조종' 연구, 대처법 제시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심리 조종'은 흔하며, 만약 자신이 피해자라면 두려움 의심 좌절감을 넘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탓이오'가 사회운동 마냥 번지던 때가 있었다. 최근 한 종교 서적에서 상반되는 글을 읽었다. "하지도 않은 일을 '내 탓이오' 해서 마음에 굳이 괴로움을 남기지 말라"는 내용이었고, '그 말이 맞다' 싶었다.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가하는 강요일 수 있고, 민감한 구성원들은 심적으로 괴로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회운동을 비롯해 정치 마케팅 종교같이 거창한 분야에서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심리치료자, 자기계발강사, 작가로 활동 중인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직장 상사나 이성, 친구, 부모가 그 가해자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10년 넘도록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심리 조종'을 주제로 연구에 매달렸고, 그 결과물을 '굿바이 심리 조종자'에 담아 펴냈다.

저자가 상황을 바라보고 선 지점이 흥미롭다. 대개 심리서적은 고통받는 당사자 내면을 치유하는 과정을 권유하지만, 이 책은 철저히 외부의 가해자를 바라보고 나서 대처법을 일러준다.

굿바이 심리 조종자 / 크리스텔 프티콜랭
'심리 조종자'에 대한 개념 설명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내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상대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관철하려 하거나, 남의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만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 심각성은 심리 조종자가 대단하거나 별난 사람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저자는 직장 상사나 연인 친구 부모 사이에 벌어지는 심리 조종에 주목하고 '바로 보기'를 조언한다. 저자의 시선은 분명하다. 심리 조종자들은 한마디로 '미성숙한 인간'이며, '어른들의 세계에 겁먹고 골이 잔뜩 난 늙은 아이들'이라는것이다.

그렇지만 심리 조종자들은 교묘하게, 상대가 느끼지 못하게 피해자를 함정에 빠트린다. 직장에서는 파워를 활용하고 가족에는 정을 무기로 내세우는 식이다. 친구 사이에는 우정을 앞세우고 연인끼리는 예속 관계를 동원한다. 그렇게 피해자를 '유혹'하고 '파괴'하고 '분노 폭발'로 이어간다. 그 시작은 이런 식이다. "우리 화요일에 만났잖아…." 사실 수요일에 만났고 피해자는 대화 내내 오류에 신경 쓰게 된다. "저번에 잊어버리고 얘기를 못 했어" 라고 말을 걸며 기대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모호한 말로 마음을 불편하게도 한다. "누구나 자신이 힘들다고 생각하잖아. 그래도 우정은 중요하잖아"식. 또 130쪽짜리 보고서를 보고 "그 간단한 보고서 잘 봤어, 전체적으로 나쁘진 않더군" 하는 식으로 미묘하게 깔본다.

피해자들은 처음엔 일상적인 스트레스로 여긴다. 주의력이 산만해지고 괜히 불편하고 안절부절못할 뿐이다. 자신이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의심과 두려움 죄의식의 3단계를 거치며, 어느새 '고양이 앞의 쥐' 신세가 돼 버린다.

심리 조종은 일상화된다. 심리 조종자가 돈을 요구하면 피해자는 잘못이라 여기면서도 돈을 주고 연애에서는 사랑을 빚처럼 생각하고 줄 뿐 받지 못한다. 심리 조종자의 욕망이나 자기연민 분노만이 표출되고 채워질 뿐이다.

그리고 쾌활하고 낙관적이며 발랄한 성품을 가진 이들이 순진하고 친절해서 오히려 지배 관계에 사로잡힌다는 게 저자의 분석. 저자의 해법은 단호하다. "타협하거나 양해하면 심리 조종자를 다스릴 수 없으니 이해받을 생각은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소통 자체를 거부할 권리를 행사하라는 것. '언젠가 대화가 되겠지'란 낙관을 버리는 게 중요할 뿐 아니라, 나아가 심리 조종자를 상대로 바로 법적 조치까지 취할 각오도 권한다.

책을 읽다 보면 불현듯 우리가 피해자일 수도, 어쩌면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불편하다. 인간관계를 심리 조종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더욱 불편하다. 저자도 그런 점을 이해하고 있는 듯, 관찰자 측면에서 보는 게 중요하다고 한마디 덧붙여놓았다.

"그들(심리 조종자들)이 없었다면 우리 입장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나를 존중하게 만드는 법을 어떻게 배우겠는가? 그들의 존재 의의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데 있지 않을까?"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이세진 옮김/부·키/264쪽/1만 3천800원.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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