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춤의 역사인 '마지막 동래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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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야류 명예보유자 문장원 씨 별세

'마지막 동래 한량'으로 불리던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문장원 상임고문이 22일 오후 1시 26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명예보유자인 고인은 1967년 동래야류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1세대 전승자다. 동래학춤과 동래한량춤 등이 시지정 무형문화재로 인정되고 이를 복원하는 데 구심점이 된, 고인의 삶 그 자체가 부산 춤의 역사였다.

향년 95세…학춤·한량춤 복원에 구심점

'소리는 전라도, 춤은 경상도, 그중에서도 제일은 동래'란 말은 바로 고인을 두고 한 말이었다. 1990년대 초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지팡이를 짚고 다녔지만, 춤판에 오르면 언제 앓았느냐는 듯이 춤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슬쩍 팔 하나만 들어 올렸을 뿐인데 백 근의 무게감이 전달됐고, 가볍게 한 발 내디뎠을 뿐인데도 춤이 됐다. 마음 가는대로 추는 허튼춤인 문장원류 동래한량춤이다. '노름마치'를 쓴 진옥섭은 고인의 춤을 '구순의 텅 비운 몸으로 여백과 만나는 한 폭의 세한도'라고 했다.

고려 말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26대손인 고인은 동래고보 시험에 두 번이나 연거푸 낙방하면서 춤과 풍류 인생을 시작했다. 동갑내기인 천석꾼 사돈과 이른 나이에 기방을 드나들며 춤을 배웠다.

열일곱 살이던 1934년 팔선녀를 태우고 가는 마부역으로 탈놀음 판에 들어선 것이 동래야류와 맺은 첫 인연이었다. 1965년 동래야류 민속예술연구회 설립해 본격적인 동래야류 재현에 나섰다. 동래야류 원양반 역할은 고인이 맡고, 말뚝이 역할은 30년 연상인 박덕업이 맡았다. 그해 10월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을 받았고, 마침내 1967년 12월 21일 동래야류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2005년에는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보유자가 됐다. 동래야류보존회 회장으로도 취임했고 부산민속예술보전협회에서 이사장을 역임했던 고인은 '동래야류지' '동래들놀음' 등의 잡지를 발간하며 동래야류의 학술적인 연구에도 힘썼다.

2007년 8월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노름마치뎐-춤의 문장원' 공연을 마지막으로 무대엔 오르지 않았지만, 매일 오전 9시 30분이면 금강공원 안 부산민속예술관에 올라와 자리를 지켰다.

고인의 3남 용민 씨는 "지난 4월 중순부터 치매가 와서 출입을 삼가고 칩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급격히 쇠약해지셨다"면서 "정신이 맑을 땐 전통민속예술하는 사람들이 대우 못 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시고, 협회 고문 자리 업무도 해야 하니 얼른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말씀도 하셨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계단(88) 씨와 용훈 용준 용민 화순 미원 씨 등 3남 2녀가 있다. 빈소는 금정구 남산동 침례병원 장례식장 7층 75호, 발인은 24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부산영락공원. 051-580-2000, 555-0092.

박진숙 기자 tru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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