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대기업이 바꾼 일상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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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월트 디즈니·샘 월튼 등 삶 다뤄

현대적인 생산 시스템을 낳은 1913년 포드의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잡담도,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노동에 몰입해야 했다. 인물과사상사 제공

일상에서 거창한 서사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현대의 일상이란 사소한 일들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직장의 구성원으로 일하고, 귀가해 마트에서 장을 보고, 휴대용 전자기기로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는 정도. 여기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 호텔에서 머물기도 하고 패션쇼 같은 이벤트가 가끔 끼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일상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가 보면 상황은 절대 간단치 않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그런 일상이 일상이 되게 한 선구자들을 추적하고 그들의 노력이 일상을 바꾼 과정을 살핀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전성원

'우리 일상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하는 저자의 의문은 당연히 기업인들에게 가 닿는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미국과 유럽에 등장한 대기업들이 지금은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인류의 삶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

이 책이 다루는, 포드자동차를 세운 헨리 포드, 글로벌 미디어 제국을 세운 월트 디즈니, 월마트를 세운 샘 월튼, AK-47 소총을 개발한 칼라시니코프, PR을 학문으로 끌어올린 에드워드 버네이스, 바나나를 세계화한 새뮤얼 제머리 등은 모두 발명가이며, 나아가 기업인이다.

인물들이 잘 알려졌든 그렇지 않든, 저자는 비판적 시선으로 그들을 살핀다. 성공담이나 개인적 업적을 찬사 일색으로 소개했던 위인전식 관행을 넘어서고자 한다. 또 그런 노력은 이 책이 기존 위인전이나 인물평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런 식이다. 다루기 쉽고 견고한 AK-47 소총을 개발한 칼라시니코프는 나치 독일로부터 조국 러시아를 구한 영웅이면서 동시에 그 장점 덕택에 전 세계에 1억 정 이상 생산됐고 인류의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무기 '소년병'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그려진다.

오늘날 대중이 즐겨 찾는 마트. 저자는 샘 월튼이 대공황 후 마진을 없앤 월마트를 냄으로써 불경기를 넘어서는 데 도움이 됐지만, 그 때문에 중소 상인들을 몰락하게 했다고 지적한다. 보잉에 대해서는 오늘날 세계 민항기의 강자인 보잉기를 만든 공로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5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도쿄 대공습에 쓰인 B-29도 생산했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는다.

에드워드 버네이스에 관해서는 현대에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경제적 행위가 된 PR을 부각해 대중과 관행과 의견을 중요하게 만들었지만, 반면 기업을 편들기 위해 이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음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고 역사적 기업인들의 행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잡다한 지식만을 모아놓은 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알게 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지적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는 셈이다.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인물 열전류'다. 최근들어 국내에 평전들이 유행하고 있지만, 일정한 주제를 놓고 다양한 인물을 다루는 종류의 서적은 드물었다. 저자인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전성원을 아는 이들은 '전성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면허장도 타이틀도 없는 진짜 고수(역사학자 한홍구)", "최고의 잡학가이자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맨(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거대한 인물의 삶을 파고드는 정통파 평전이나 열전은 아니지만, 기회와 발상, 인물 선정, 주제 의식이라는 면에서 참신하고 흥미로운 인물 열전이다.('88만 원 세대'의 저자 박권일)". 전성원 지음/인물과사상사/536쪽/1만 8천 원.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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