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교수 연재 기고 정수장학회를 말한다] ⑥ 부일, 5·16, 정수장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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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5월 김상훈 부산일보 사장이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장에게 장학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일부에서는 김지태가 1958년 11월 10일 자신이 소유한 부산 시내의 땅 10만 147평을 기본재산으로 설립한 부일장학회가 탈세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나, 부일장학회는 이런 불순한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부일장학회는 김지태 회장이 박정희 등에게 재산을 강탈 당할 때까지 약 3년 반 가량의 짧은 기간 존속했는데, 그 사이 1만 2천364명에게 총 17억 7천3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1인당 평균 14만 3천4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한 셈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조선일보 1960년 1월 22일자 <우리나라 장학금제 실태>라는 기사에 따르면 1960년 초 문교당국에 등록된 육영단체는 모두 37개로 그 중 실제로 장학금을 지불하고 있는 곳은 절반도 안 되었다고 한다. 당시 가장 규모가 큰 장학회는 '상이군경장학회'로 상이군경 자녀 300명에게 연간 1인당 5만 원을 지급했다. 1959년 서울시교육위원회는 시비장학생으로 53명을 선발하여 연간 6만 원을 지급했고, 문교부가 1955년부터 1959년까지 5년간 선발한 국비장학생은 1천200여명(대학생 연간 12만 원, 중고생 연간 5만~6만 원)에 불과했다.

박정희 동창·친인척 등 이사진 포진
박근혜 이사장 10년간 22억 급여 챙겨

부일장학회가 3년간 연평균 4천여명에게 1인당 14만 3천 원을 지급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부일장학회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김지태는 부일장학회와는 별도로 모교인 부산상업고등학교에 김지태 장학금, 백양장학금 등 폭넓은 장학혜택을 주어 전교생의 3분의 1가량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집안이 가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일장학금을 받아 중학교를 졸업했고 부산상고는 백양장학금을 받아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박근혜 측에서는 정수장학회가 5·16장학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려 3만 8천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온 모범적인 장학회라고 주장한다. 정수장학회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장학회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모범적'인 장학회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부일장학회는 3년간 연평균 4천여명, 마지막 해인 1961년에는 5천2백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부일장학회가 장학금 규모를 확대하지 않고 그 정도 규모만 유지했다 하더라도 50년이면 20만 내지 25만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15만~20만 명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서울시교육청은 2012년 7월 말 정수장학회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의원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던 10여년간 급여와 섭외비 등의 명목으로 무려 22억여원의 막대한 돈을 정수장학회로부터 받아갔다. 정수장학회는 이름만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땄을 뿐 박정희, 육영수 부부나 그 자녀들의 재산은 단 한 푼도 들어가 있지 않다. 김지태 회장은 자신이 천문학적인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을 뿐 장학회로부터 동전 한 닢 받아가지 않았다. 그 돈이 있었으면 장학금을 한 명이라도 더 주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병철 등 유력한 경제인들과 자신의 최측근들을 5·16장학회 이사진에 앉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왕학수, 조증출, 황용주 등 대구사범 동창이나 김영기 등 대구사범 시절의 은사, 박정희와 동서인 조태호 등 박정희의 친인척들이 이사 자리에 늘 앉아있었다는 점이다. 박정희가 살아있는 동안 5·16장학회는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창들이나 친인척들의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창구 역할을 했다.

뒤이어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30대대장과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지낸 박정희의 근위병 출신이었다. 그는 '새 시대'를 표방하면서 박정희의 흔적을 한편으로는 지웠지만, 박정희 유족들에 대한 예우를 나름대로 하려고 했다. 박정희 재임 시절 5·16장학회는 단순한 재단법인이 아니라 국가기구에 준하는 성격을 가졌다면, 그 이름을 바꾼 정수장학회는 이제 박근혜 일가의 사유재산과 다를 바 없게 된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5·16장학회가 보유한 재산 모두를 정수장학회로 넘겨준 것은 아니다. 박정희는 MBC가 TV방송을 시작한 후 악화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1971년 3억원이었던 자본금을 쌍용, 현대, 금성, 교보 등 7개 재벌기업에서 7억을 걷어 10억으로 증자했다. 전두환은 이 증자분인 문화방송 주식의 70%를 떼어 KBS에 주었는데, 1987년 6월항쟁 이후 이 70%의 지분으로 방송문화진흥회를 설립한 것이다. 5·16장학회가 문화방송의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었던 반면, 정수장학회의 몫이 30%로 줄어든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현재 정수장학회는 매년 MBC에서 20억, 부산일보에서 8억 원을 기부 받아 이 돈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매출액 대비 재단기부금은 MBC는 0.26%, 부산일보는 1.8%에 해당한다. 지분율을 감안한다면 MBC가 20억을 낸다면 부산일보는 3억 원 정도를 내는 것이 비율에 맞다고 할 것이다. 매출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부산일보가 3배 가까운 출연금을 내는 셈이다. 이는 부산일보에 드리운 정수장학회의 무거운 그림자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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