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교수 연재 기고 정수장학회를 말한다] ① 무엇이 문제
재산 한 푼 안 보탰는데 '정수'라니 박근혜 의원 이중잣대가 '언어도단'
역사에 대한 판단은 후대의 몫이라고 한다. 박정희 정권이 1962년 7월 14일 부일장학회를 강탈해 5·16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로 바꾼 지 50년이 됐다. 본보는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기고를 통해 정수장학회의 탄생 배경과 과정을 소개한다.
2012년 상반기 한국 사회에서는 MBC KBS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 부산일보 등 6개 언론사에서 파업 또는 파업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두 개도 아니고 6곳이나 되는 언론사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한국의 언론지형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언론이 이런 진통을 겪게 된 이유로는 가까이는 MB정권의 언론장악을 들 수 있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언론장악이 있다.
박정희 정권은 언론사를 강탈하여 이를 5·16장학회를 통해 관리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뒤 그 이름을 바꾼 것이 바로 정수장학회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5·16장학회는 한때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경향신문 등 4개의 언론매체를 보유했다. 정수장학회는 현재도 한국문화방송 주식의 30%, 부산일보 주식의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경향신문의 사옥부지 역시 정수장학회의 소유로 되어 있다.
2011년 11월 30일에는 노조와 사측의 대립으로 부산일보가 결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과 사장후보 추천제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노조위원장과 편집국장에 대한 징계를 넘어 사장의 명령으로 윤전기를 멈추는 극한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정수장학회 문제에서 부산일보가 특별한 주목을 받게 되는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5·16장학회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62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부산일보 김지태 사장 소유의 부산일보 주식 100%, 한국문화방송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65.5%와 부일장학회의 기본 재산인 토지 10만 여 평을 강탈하여 설립한 것이다.
지금은 방송의 규모가 신문에 비해 훨씬 커졌지만 당시로서는 김지태 사장의 언론 3사 중에서 본가 역할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부산일보였다. 정수장학회가 현재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언론사도 부산일보이다. 문화방송의 경우 주식의 30%를 보유하고 있지만 제1주주는 70%를 보유하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이기 때문에 정수장학회 문제가 MBC 파업에서 전면에 제기되고 있지는 않다.
부산일보 발간중지 사태의 근본 원인은 정수장학회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 사이의 특수관계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의원 자신이나 정수장학회 측은 장학회가 박근혜 의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김지태 사장으로부터 언론 3사를 강탈한 장본인은 박근혜 의원의 아버지인 박정희였지, 박근혜 의원 자신은 아니었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고, 이 기간 도합 22억 5천만 원 가량의 막대한 돈을 연봉으로 챙겨갔다. 박정희, 육영수 부부는 생전에 장학회에 개인 재산이라고는 동전 한 닢 내놓은 적이 없지만 정수장학회라는 명칭은 그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꿈꾼다면 정수장학회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딸로서 아버지의 잘못된 행위를 인정하고 나아가 바로잡는 것은 인간적으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만약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 시절, 최고 권력자가 방일영 장학회와 조선일보를 강탈하여 김대중 장학회나 노무현 장학회를 만들었다면 '대통령 박근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원칙을 강조하는 정치인 박근혜가 이 문제에 대해 이중 잣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필자는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사건을 조사할 당시 '본의 아니게' 이 사건의 조사를 담당한 바 있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부일장학회 사건의 조사에 착수하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은 서둘러 정수장학회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7월 10일 박근혜 의원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정수장학회 문제는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며, 정수장학회 문제해결을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무엇이 법치국가이고, 무엇이 언어도단인가?
필자는 박정희가 헌정 질서를 유린한 대한민국에서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인 언론사 강탈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장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부산일보의 독자들과 자세히 살핀 뒤, 박근혜 후보께 다시 한 번 과연 무엇이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인지를 정중히 여쭙고자 한다.
■ 한홍구 교수는 누구
1959년 생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워싱턴대 역사학 박사
국정원과거사위 민간위원
평화박물관 추진위 상임이사(현)
성공회대학교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