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올림픽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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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스포츠 하면 선수들만의 놀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정작 간과하고 있는 것은 구경꾼, 즉 관중의 참여에 의해 승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승리로, 지는 것을 패배로 만드는 것은 결국 구경꾼의 기대에 따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면 '두바이 국왕이 어제 저녁에 뭘 먹었느냐와 마찬가지로, 우리 생활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인데도 구경꾼들은 흥분한다.

사람들을 경기에 열광하게 만드는 데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다분히 숨어 있다.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1896년 그리스, 1908년 영국왕실이나 1912년 스웨덴 구스타프왕과 같은 권력자들은 올림픽 유치로 국내 정치, 경제 현안들을 덮어 버리려 했다. 가장 정치적이었던 대회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11회)이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22회), 1984년 LA 올림픽(23회)은 정치적인 대립으로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 최근에는 국가 수반이 유치전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이명박 정권 말기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체결',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에 대한 수사,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같은 정치적 현안들이 즐비하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런던 올림픽만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로 위기에 몰린 이 대통령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스포츠가 아무리 흥미진진한 구경이더라도 공연물처럼 재연하는 게 불가능하다. 재연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덧없음을 뜻한다. 올림픽은 올림픽일뿐이다. 런던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림픽 기간 중 경기를 즐기면서 가볍게 기분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와 상관없이 모든 참가선수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올림픽에 매달려 현실을 외면할 때 권력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박태성 논설위원 pt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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