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게이·레즈비언의 사랑 모른 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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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청년필름 제공

영화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이다. 10·26사건 현장을 재현한 '그때 그 사람들', 미국 월가를 배경으로 자본에 대한 냉소를 주워담은 '월스트리트', 교내 성폭력 사건을 고발한 '도가니' 등이 그렇다. 물론 말랑말랑한 연애담이나, 따스한 가족이야기를 담은 휴먼 드라마, 삶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아이들을 꿈의 공장으로 안내하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그중에는 흔히 '동성애 영화'로 불리는 '퀴어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역시 사회적 소수자인 게이 혹은 레즈비언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또 다른 무기인 셈이다.

■ 게이 감독의 장편 퀴어영화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일찌감치 선언(커밍아웃)한 김조광수(47) 감독. 지난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흥행시킨 영화제작자이자 충무로의 대표적 게이 감독이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은 김조광수 감독의 첫 장편 퀴어영화다.

서로 간절한 소망 위해 위장결혼
옆집에 애인 숨겨두고 이중생활
'커밍아웃' 김조광수 감독 작품


'이들의 사랑을 모르는 척 해주세요'라는 카피가 암시하듯 영화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긴 위장결혼으로 막을 올린다.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이 민수(김동윤 분)와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레즈비언 효진(류현경 분)은 같은 병원 의사. 서로의 간절한 소망을 위해 둘은 위장결혼하고 한집에 살게 된다. 밖에서 보면 완벽한 부부지만 옆집에 애인을 숨겨두고 이중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민수의 부모님 때문에 이들의 위장결혼은 물론 그들의 진정한 사랑까지도 위태로워지는데….

■ 그래도 우린 사랑을 한다

로맨틱 코미디로 버무려낸 그의 영화는 어느새 성장하고 있었다. 10대 게이의 풋풋함을 그린 '소년, 소년을 만나다'와 20대 초반 게이들의 군대 에피소드를 담은 '친구사이'는 단편이지만 줄곧 게이 이야기를 해 왔다. 이번 작품 '두결한장'에서 전작의 주인공들은 이제 그들만의 연애담을 나눌 만큼 부쩍 자란 것.

동성애자 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겪어야 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외부 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게이 커플과 그들의 모임에 초점을 맞춘 것. 김조광수 감독 자체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서 그들의 모습은 꽤 사실적이다.

영화의 깨알 같은 웃음은 게이 5인방이 책임진다. 커밍아웃했지만 연애 한 번 못해 본 왕언니(박수영 분), 무한 긍정에너지를 가진 푼수 티나(박정표 분), 게이계의 라이징 스타 익훈(장세현 분) 등 게이 코러스 그룹인 G-VOICE의 '언니들'인 이들은 호칭 끝에 '~년'을 붙이고 코믹한 음담패설을 잔뜩 늘어놓아 배꼽을 잡게 한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그러하듯 '두결한장'의 마무리는 역시 사랑의 결실이다. 민수와 효진은 곡절 끝에 커밍아웃하고 각자의 연인인 석(송용진 분), 서영(정애연 분)과 결혼식을 올린다. 영화의 제목이 알려주는 '두 번의 결혼식'은 위장결혼과 동성결혼을 한 번씩 했다는 의미다. 

■ 여전히 낯선 동성애 영화


이 작품에서 김조광수 감독을 빼고 배우들은 모두 이성애자들이다. 동성애자 연기자를 캐스팅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조광수 감독은 "일단 커밍아웃을 한 배우가 많지 않다. 커밍아웃하지 않았지만, 동성애자라고 알려진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간담회 등 공식석상에서 동성애자가 아닌 척 행동해야 하는데 그 역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사회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의 고충을 은연중에 전해준다. 석은 동성애자인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남동생 때문에 가족 관계가 거의 단절돼 있고, 민수와 효진도 직장인 병원에서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생활해 나가는 것. 곳곳에 웃음장치를 마련해놓고 있지만, 동성애자들이 처한 현실을 사실감 있게 담아내며 공감을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영화가 성장했다'란 점을 빼놓고 전작과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지적이나 '동성연애가 여전히 낯설다'란 반응도 없지 않다. 하지만 사회의 소수자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큰 부담 없이 유쾌하게 뽑아낸 감독의 조련술은 남달라 보인다. 21일 개봉.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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