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자 전, 역동적 반원의 반복… 춤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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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자의 '플라멩코'. 수호롬 부산 제공

1968년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서 미술인 정찬승, 강국진과 함께 '투명풍선과 누드'라는 파격적인 해프닝을 선보였던 여성이 있었다. 독특한 환상의 세계와 색채의 향연을 펼쳐 보이는 작가로 유명한 정강자(70) 화백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장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가 수호롬 부산에서 춤을 주제로 한 에너지 넘치는 작품을 선보인다. 부산에서 개인전을 갖기는 화업인생 45년 만에 처음이다. "이상하게 기회가 없었어요. 이제야 그 기회를 갖게 됐네요."

작가는 20대부터 여행하기를 좋아해 지금까지 50여 개국을 돌아다녔다.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원시성이 넘치는 춤을 화폭에 구현했죠. 춤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 있어요," 그는 '춤을 그리다'(2010년, 서문당)라는 책을 펴낼 정도로 춤에 대해 관심이 남다르다.

인간의 원초적인 몸짓을 승화시킨 것을 춤이라 했던가? "춤 중에서도 우리 춤 동작이 단연 최고죠. 탈춤, 승무, 장구춤…. 발레는 200호 정도의 큰 화면에 모두 채우기가 어렵지만, 우리 춤은 움직임이 역동적이어서 꽉 채울 수 있죠. 그게 바로 우리 춤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춤꾼인가' 착각할 정도로 춤 이야기가 좀처럼 끝날 줄 모른다.

그는 그 춤을 자신만의 언어이자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그게 바로 '반원'이다. 그의 작품 속엔 사람도, 풍경도 모두 반원을 통해 구현된다. 수많은 기하학적 반원들은 때론 춤의 역동성을. 때론 춤의 환희를 만들어낸다. 원색조의 화려한 컬러와 만나, 강렬함을 더한다. 이국의 춤이나 풍경이 강렬하면 할수록 그 색채도 더 짙어진다.

반원 하나하나에서는 형상화된 사물을 쉽게 유추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모이고 지워지고, 이어졌을 때는 그 실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비구상의 구상이랄까? 과감한 생략과 절제를 통한 비움. 그곳엔 환상적인 춤사위가 있다. 화면 전체에서 구사하고 있는 어둡고 밝은 색채의 반복. 여기에 명도 변화를 통해 입체감을 더해 어느새 한국의 춤, 세계의 춤이 구체화한다. 강렬한 몸짓, 다이내믹한 에너지가 관람객에게 전율처럼 다가온다.

피라미드 같은 삼각형의 구도 속에서 장구춤은 역동성을 드러낸다. 얼핏 보면 반원은 장고의 울림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착각에 빠진다. "나만이 그릴 수 있는 언어를 가지려고 고심했어요. 그게 거의 40년이 걸렸습니다." 작가는 2004년부터 반원을 이용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야요이 구사마 등은 원으로 성공했죠. 그래서 저도 원을 많이 생각했는데, 어느 날, 원을 한번 쪼개보자 생각한 거죠. 쪼개보니 우리의 선과 너무 닮아 있었어요. 우리 전통의 곡선인 버선코. 처마의 선이 바로 그곳, 반원 속에 있었죠."

황토색으로 표현된 승무에서는 우아함 속 고요함이, 붉은색으로 표현한 플라멩코에서는 정열의 기운이 각기 느껴진다.

작가는 일흔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을 땐, 하루 10시간가량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하나만 생각하지 않고 캔버스를 여러 개 세워두고 그리곤 하죠."

그의 작업은 오래전부터 이미 캔버스를 넘나들었다. 상상의 표현수단으로 제일 처음 붓을 들었을 뿐. 글로, 퍼포먼스로 그리고 조각으로.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감과 감동에 형식은 거추장스럽다. ▶정강자 전=31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수호롬 부산. 051-744-8555.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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