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데인저러스 메소드' 정신분석학자 융, '지독한 사랑'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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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삼각 로맨스 그려

'데인저러스 메소드' 영화사폴 제공

정신분석학이 무엇인지 생소한 사람조차 프로이트나 융이란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20세기를 수놓은 위대한 지성을 언급할 때 반드시 들어갈 이름들이다. 하지만 위대한 지성일수록 우상화되기 쉽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 우리에게 생경한 즐거움을 준다는 점이다.

위대한 인물의 그림자를 마주한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다. 우상화된 그들의 껍질을 벗겨 내는 것은 역사 속 위인을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정신분석학계의 거두 칼 융과 한 여인 사이의 위험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융과 그의 스승 프로이트 간의 결별 이면에 숨겨졌던 속사정에 관한 영화다. 당연히 이 영화의 즐거움도 그들의 고뇌와 실수를 마주하는 데 있다.


아직 풋내기 정신분석학자였던 시절의 칼 융(마이클 파스빈더)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프로이트(비고 모텐슨)의 이론을 완성해줄 촉망받는 신진 연구가였다. 프로이트와의 이론적 교류를 통해 한참 성장해가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사비나 슈필라인(키이라 나이틀리)라는 여인이 찾아온다. 프로이트의 대화치료법에 관한 이론을 증명하고자 첫 번째 임상환자로 사비나를 선택한 융은 이후 그녀와의 깊은 대화 과정에서 자신마저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어느새 사비나와 내연의 관계가 된 그를 두고 프로이트는 이성과 윤리를 지키지 못했다며 분노하지만 융은 오히려 그녀와의 경험을 통해 프로이트의 이론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가정을 버릴 수 없었던 융과 사비나는 끝내 헤어지고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융을 쫓아 의사가 된 사비나까지 각자 정신분석학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과 견해를 펼쳐나간다.

위대한 발견은 의외로 우연과 실수, 집착의 산물인 경우가 다반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아직 미성숙하고 풋내기였던 시절의 융이 스승과 여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통해 정신분석학의 근본을 훑어간다. 융이 프로이트로부터 독립하여 분석심리학의 대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비나라는 여인과의 스캔들이 숨겨져 있었다는 야사(夜事)를 바탕으로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인간 융의 고뇌를 정신분석학계의 위대한 발견의 순간과 엮어 나가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쉼 없는 대화를 통해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이 다듬어져 가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할 뿐만 아니라 현학적이지도 않다. 서사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융을 중심에 둔 프로이트와 사비나의 삼각 멜로드라마에 있다. 영화는 희곡 '토킹큐어'를 원작으로 하되 비교적 많은 에피소드를 덜어내고 융의 슬픈 사랑에 집중한다. 덕분에 위인이 아닌 자연인 융이 보인다. 기대보다 감정의 진폭이 그리 크지 않은 건 아쉽지만, 인간 융을 이해하기에 모자라지도 않다. 10일 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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