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낸 차명계좌만 수십 개… 드러난 비리는 빙산 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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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납품비리 어디까지

원전직원과 납품업체간의 뇌물로 연결된 비리 구조가 상당기간에 걸쳐 형성된 고질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부산일보DB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직원들의 비리가 복마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각종 사고로 툭하면 가동이 중단됐던 원전이 이번엔 '안전성'과 직결된 직원들의 납품 비리로 얼룩지면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줄줄이 터지는 납품비리

지난달 초 납품업체부터 2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한수원 영광원전 이 모(44) 과장을 시작으로 2일 현재까지 울산지검에 구속된 원전 직원은 4명에 이른다. 고리원전 문 모(56) 차장, 같은 발전소 허 모(55) 팀장, 월성원전 정 모(49) 팀장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구속된 고리원전 2명을 포함하면 6명으로 늘어난다. 수사를 받던 고리원전 한 간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브로커 윤 모(56) 씨도 구속됐고 납품업체 간부 서 모(58) 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울산지검에 구속된 원전 직원 4명의 확인된 뇌물액 3억 원 이외에 이들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된 5천 만원에서 최고 10억원에 이르는 돈의 출처와 행방이다. 브로커 윤 씨가 받은 6억 9천만 원의 사용처도 집중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검찰은 이 자금이 다른 실무자나 고위층에 넘어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윤 씨는 한수원 본사의 고위 간부 상당수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드러나 이들에게 로비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한수원 본사의 간부가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지역 본부에서 시작된 납품비리가 본사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검찰은 10곳 가량의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어서 납품비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연이어 터진 비리

불법복제 도와주고 중고품 무단 방출…
한수원 간부 연루 수사 확대 불가피

뿌리깊은 비리 구조

장기 독점 구조에 신생사 진입장벽 높아
직원-업체 유착관계 형성되기 쉬워
10억 미만 지역본부서 구매 '관리 사각'

복제품 과연 안전할까

한수원, 성능검사 통과 문제없다지만
"안전성 검증 전수조사" 커지는 목소리

■고착화된 비리구조

뇌물로 연결된 원전 직원과 납품업체들은 중고품을 무단으로 반출해 새 제품으로 둔갑시키거나 정품을 빼돌려 불법 복제를 도와주고 납품받는 비리를 저질러 왔다.

허 팀장의 경우 2009년 12월 고리원전에 보관 중인 프랑스 모 업체가 제작한 밀봉 유닛을 한 업체에 넘겼다. 이 회사는 이를 토대로 복제품을 만든 뒤 특허까지 받고 허 팀장을 통해 고리원전 3호기에 납품했다. 이 업체는 영광원전에도 같은 제품을 납품했다. 이 과정에 각각 8천 만 원과 1억 원의 뇌물이 오갔다.

앞서 동부지청에 구속된 신 모(45) 과장은 녹슨 터빈 밸브작동기를 납품업체로 빼돌린 뒤 신품인 것처럼 속여 재납품 받고 3억여 원의 뇌물을 챙겼다. 같은 발전소 김 모(49) 팀장은 10여개 납품업체에 편의를 봐주고 3억 7천여만 원을 받았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명계좌로 받았다. 원전 직원과 납품업체의 뇌물고리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형성됐다는 증거다.

지난해 동부지청이 수사과정에서 찾아 낸 원전 직원들과 협력업체가 사용한 차명계좌는 모두 69개에 이른다. 이번 울산지검의 수사에서도 직원들이 차명계좌로 뇌물을 받은 것이 속속 드러나면서 차명계좌 찾기에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원전직원들이 쉽게 뇌물 유혹에 빠지는 것은 납품 구조에서 비롯됐다. 원전 부품은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다 보니 한 번 납품한 업체가 장기간 독점적으로 납품을 맡는 경우가 많아 원전 직원과 남품업체 간에 유착관계가 형성되기 쉬운 구조다. 이로 인해 신생 납품업체는 납품 계약을 따내기 위해 브로커를 이용하게 되고 결국 뇌물이 오가게 되는 것이다.

2010년도 전국 21기 원전에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부품비용은 1조 3천억 원에 달한다. 한수원 본사가 아닌 지역 본부에서 구입한 금액도 2천300억 원이다. 납품규모가 10억 원 이상이면 본사가, 이하면 각 원전이 자체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납품비리로 구속된 원전 직원들은 지역 본부에 근무하고 있다.

■복제품 국민 불안 가중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가중된 상황에서 고리원전 등에 중고품과 복제품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자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제품에 대한 안전성 검증과 전수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수원은 직원이 외부업체에 부품을 뻬돌린 행위는 문제가 있지만 부품은 특허까지 받은 '정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수원은 국내에서 제조된 제품이 기존 외국산과 비교해 성능과 경제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수원은 부품 성능검사를 통해 이를 '개발선정품'으로 지정, 3년간 납품을 보장했다.

원전 부품은 처음 고리원전을 건설한 웨스팅하우스가 독점 공급해왔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가 부품생산을 중단하면서 현재는 프랑스 아레바사가 독점 생산을 하고 있다. 독점 생산으로 부품 가격도 높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부품 국산화에 나섰고 현재 원전 부품의 국산화율은 95%에 달한다. 부품 국산화는 기술이전, 자체 개발, 부품 모방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최근 복제품으로 확인된 밀봉유닛에 대해 안전성 검사에 나서기로 했다. 검찰은 "국민들이 부품의 안전성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어 이를 검증하기 위한 연구기관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납품계약은 공정했나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를 폭로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김수근 부산시의원의 부인이 운영하는 업체가 김 의원이 고리원전 감시기구 위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 납품계약 체결건수와 액수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의원이 기장군의원과 시의원으로 연속 당선돼 감시기구 당연직 위원으로 선임된 2006년 7월∼지난달 25일까지 수의계약을 포함해 총 179건에 50억 원 상당에 이른다. 반면 김 의원이 감시기구 위원이 아니었던 2002년 1월∼2006년 6월 말까지는 1건에 4천400만 원에 불과했다.

김 의원과 고리원전 측은 "전자입찰 방식으로 납품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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