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문장] 눈물이 토해낸 문장
나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논산일기 2011 겨울 / 박범신
자꾸 들여다보니, 비어 있으나 꽃병은 꽃병이어서, 그냥 아름답다. 아니 비어 있어서 더 아름다운 것도 같다. 나는 꽃병을 볼 때마다 가득 꽂혀 있는 꽃을 판타지로 본다. 어떤 때는 분홍장미, 어떤 때는 안개꽃, 또 어떤 때는 내가 좋아하는 흰 카라를. 그러고 보면 다 채운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빈 것들은 내가 상상으로 채울 수 있으니 때로 더 아름답다.(81쪽)
제자들 여럿과 모처럼 만나 술 마시는데 창 너머, 북한산 자락에 눈이 내린다. 폭설이다. 이내 세상이 하얘진다. 젊은 처녀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른다. 나는 함성이 아니라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눈 온다. 세상이 지금 하얗다. 괜히 아름답고 기쁘고, 그래서 그렇다. 슬픔과 기쁨은 내 속에서 완전하게 한 숙주로 맞물려 있다. "선생님, 울어요?" 눈 밝은 처녀 지적에 얼른 고개를 돌린다. 난 왜 이리 눈물이 많을까. 눈물은 나의 가장 아름답고 절실하고 화려한 문장이다. 반역이고 사랑이다.(119쪽)
가슴에 꽂히는 문장입니다. 외형적인 대상이나 단어를 내면으로 느껴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적합한 표현을 찾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예민한 통찰력과 폭넓은 경험과 공부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눈물은 가장 복합적이고 격정적인 감정이 밖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진심 어린 눈물 한 방울이 백 마디 말보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건 이 때문입니다. '눈물은 가장 아름답고 절실하고 화려한 문장'이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나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논산일기 2011 겨울'은 소설가 박범신이 지난해 7월 명지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고향 논산으로 내려가 페이스북에 틈틈이 썼던 일기를 모은 책입니다. 문학적 감수성을 갖게 해준 고향 이야기, 서울과 논산을 오가며 느낀 현 세태, 문학과 삶에 대한 열정과 연민이 눈길을 끕니다. 박범신 지음/은행나무/324쪽/1만 4천 원.
김종균 기자 kjg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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