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반야월의 노랫말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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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2005년 20주년을 맞아 '가요무대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다 출연자는 주현미로 거의 두 번에 한 번꼴로 나왔다. 가장 많이 방송된 가요는? 반야월이 작사한 '울고 넘는 박달재'로 107회 방송됐다. 7년이 지났으니 이 집계가 달라졌을 수 있겠다. 그럼 그 노래를 부를 때 '천둥산, 천동산, 천등산'이라고들 하는데 어느 것이 정확할까. 일부 노래방 기기에는 천둥산으로 나오지만 천등산이다. 하늘까지 오른다는 의미라고 한다.

해방 후 반야월은 남대문 악극단을 조직, 지방 순회공연을 떠났다. 충주에서 공연을 마치고 제천으로 향했다. 트럭 한 대에는 무대 장치물을 싣고 버스 한 대에는 단원들을 태우고 고개를 넘을 때였다. 앞서 가던 트럭 타이어에 펑크가 나 멈춰섰다. 고갯마루에서 길 가던 한 농부에게 이 고개 이름이며 산 이름을 물었더니 박달재라고 했다. 산모퉁이를 돌아보니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이 성황당 돌무덤 앞에서 이별의 정을 나누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 장면과 느낌들을 메모했다가 만든 노랫말이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이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 피난길에서 엄마 등에 업힌 채 영양실조로 숨진 어린 딸의 비극을 토대로 쓴 작품이었다. 5천여 곡에 이른다는 그의 노랫말에는 해방 전후부터 우리 부모들이 살아온 시대의 애환이 잘 담겨 있다. 트로트가 "흘러간 가요가 아니라 흘러온 가요"라는 그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려진다.

'노래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작사가'이지만 예명은 보름달이 아니라 반야월(半夜月)이다. 곧 일그러질 보름달보다 앞으로 점점 커질 반달이 희망적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단다. 그가 엊그제 별세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존재감을 알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종규 수석논설위원 k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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