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배 고치러 온 외국 선원 권총 차고 부산 시내 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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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수리차 한국에 입항한 20대 러시아 선원이 살상 가능한 권총을 몸에 지닌 채 부산 시내를 활보(부산일보 12일자 10면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은 세관의 '떠넘기기'와 조선소의'잇속 챙기기'가 한몫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소와 세관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이익을 챙기려는 구조 속에서 일반인에 비해 통관 절차가 간소한 틈을 이용한 선원 범죄가 발생함에 따라 허술한 통관 절차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관 "인력부족" 조선소에 업무 떠넘기고 
조선소 "고객 안 올라 …" 철저한 검색 외면

11일 경찰에 체포된 러시아 선원 H(22) 씨는 조선소를 빠져 나올 당시 반드시 거쳐야 할 몸수색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H 씨는 허술한 통관 절차의 틈을 타 살상 가능한 권총을 지닌 채 부산 중구 남포동과 국제시장 일대를 2시간 가량 활보했다.

부산본부세관은 해당 조선소와 지난 2002년 5월 '총기류, 폭발물 등 테러위해 물품 및 마약류 밀반입과 밀수방지를 위한 상호협조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세관은 양해각서에서 조선소를 통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통관절차를 조선소에 일부 위임했다. 조선소는 통관법에 따라 외국인 선원들의 선원수첩·상륙허가서 확인과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몸 수색을 해야 한다. 부산본부세관은 지금까지 이 같은 내용의 양해각서를 부산 지역 21곳 조선소와 체결했다.

그러나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부산 대부분의 조선소에서 외국인 선원에 대한 몸 수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세관 관계자는 "세관 직원이 직접 나가 심사해야 하지만 직원이 부족한 탓에 조선소와의 양해각서를 체결해 위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여 곳이 넘는 조선소에 비정기적으로 입항하는 외국 국적 선원들의 심사를 위해 통관 담당직원을 모두 파견하기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세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한해 동안 부산지역 조선소에 선박 수리를 위해 입항한 외국 선박은 395척, 선원은 5천496명에 이른다.

세관은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몸 수색을 소홀히 한 해당 조선소에 대해 통관 제한 등의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조선소 측은 "통관 절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비 직원의 착오로 외국인 선원에 대한 통관이 차질을 빚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주요 고객인 외국 선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그물망 수색'을 벌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선소 관계자는 "통관절차를 까다롭게 할 경우 선사들이 입항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려운 조선업 경기 탓에 꼼꼼한 통관 절차를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추가 범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세관과 조선소가 맺은 양해각서에 대한 점검과 관련 책임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해각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어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외국인 선원의 출입 관리를 소홀히 한 조선소와 관리·감독권을 가진 세관 모두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1일 H 씨로부터 압수한 러시아제 공기권총 MP-654K에 대한 성능 검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하고, H 씨를 상대로 추가 범행 여부를 조사 중이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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