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이란 자유를 향한 공동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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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인디고 연구소

슬라보예 지젝은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배제의 장벽을 부수는 것을 통해 공동 삶의 윤리와 양식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궁리 제공

지난해 2월 인디고 서원의 인디고 연구소 청년들은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로 날아갔다. 라캉,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으로 불리는 세계적 석학 슬라보예 지젝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동시대에 일어나는 전 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새롭고 폭넓은 시각으로 해석하고, 그에 대해 가장 명쾌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국내 지젝 관련 책 중 최초의 인터뷰집이다. 인디고 연구소 청년들은 지젝으로부터 공동선이란 무엇인지,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 등 다양한 혜안을 담아 왔다. 책은 인디고 연구소가 기획한 '공동선 총서' 시리즈 첫 번째. 연구소는 이어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인터뷰집을 잇달아 낼 계획이다.

인디고연구소 '공동선 총서' 시리즈 첫 권
동유럽의 기적으로 불리는 실천적 지식인
슬로베니아 석학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집


'공동선(common good)'은 무엇인가? 지젝은 공동선을 '자유를 향한 공동투쟁'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본다. 여기서 '공동'이란 배제된 자와 포함된 자의 장벽을 허무는 보편적 해방의 근본 조건을 뜻한다. 자본주의의 환영이 1%와 99%라는 새로운 형태의 장벽을 만드는 현실에 대한 진실의 추구이자 정의에 대한 정당한 요구다. 그러니까 배제와 간극의 논리를 넘어 공동 삶의 윤리와 양식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지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배제된 자와 포함된 자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들(Walls)'이다. 그의 사유는 궁극적으로 '자본'을 겨냥한다. 지젝에게 있어 자본주의는 배제와 분할을 작동시키는 근원적인 악의 체제이다. 오늘날 새롭게 생성된 아파르트헤이트인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사이를 가르는 '장벽들'을 부수는 일이야말로 지젝 철학의 궁극지점이다. 이는 공동선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젝은 카타르에서 겪었던 경험을 말한다. 필리핀, 네팔,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섭씨 57도의 폭염 속에서 냉방기구 없이 일만 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들의 월급은 한 달에 150달러에 불과했다. 고용주들은 그들에게 쇼핑도 못하게 하는 등 노예처럼 부려먹었다. 지젝은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배제의 단면으로 보고 사회적 폭발을 축적시킬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젝은 "마르크스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이 단 하나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는 두 세계 사이의 극단적인 간극이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한쪽은 사람들이 일하고 소비하는 현실, 또 다른 한쪽은 끝없이 순환하는 자본이라는 가상이 바로 두 세계이다. 간극이 벌어지는 지점에서 지젝은 배제의 문제를 발견한다. 여기서 배제의 문제는 오래된 노동가-자본가 사이의 계급 구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카타르 노동자 같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문제를 의미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점점 커지고 있는 불화와 간극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한다"며 "경제적 논리 그 자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지가 중대한 과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간극을 넘어설 새로운 혁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지젝은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진정한 해답은 없다고 본다. 기존 급진적 좌파의 이라크 반전 시위, 반인종주의, 여성 인권 운동 등은 기존 구조 안에서 혁명을 외치는데 그쳤다. 하지만 최근 근대 역사상 최초로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혁명이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월가 점령 시위는 표적을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로 본다. 이러한 움직임의 기본 전제는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로 향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통찰은 아주 중대한 변화다.

지젝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시스템 안에서도 간극과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불충분하다고 본다. 현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젝은 "포퓰리즘 정당 대표가 다시 총리로 당선된 헝가리나 노르웨이 극우 인종주의자의 총기 난사 사건 등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현상"으로 분석한다. 파국에 직면한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이에 대한 병리적 대응이 폭력적인 민족적 포퓰리즘의 후퇴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지젝은 "시위와 행동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제대로 사유하는 것이며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트워크를 조직할 것을 촉구한다. 중동 민주화 시위 등 세계 곳곳의 기적과도 같은 폭발적 운동이 단숨에 사라지지 않을 근본 토대를 탄탄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다. 그는 "눈앞에 있는 사안을 골라 무엇에 대해 싸울지 결정한 후에 대중적인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현실적인 변화의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늘 보아왔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이 세계를 철저하게 그 바닥에서부터 다시 사유하라!' 지젝의 생생한 육성이 내면에 확성기처럼 울린다. 인디고 연구소 지음/궁리/348쪽/1만 8천 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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