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우리 브랜드] 金太郞 (긴타로)
일본과 무관한 30대 창업 꼬치구이 전문점 '대히트'
술에 취해 차수를 변경해 가며 자리를 옮기다 최근 들어 꼭 한 번은 들르게 되는 곳이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식 선술집이 그곳이다. 이국적인 분위기로 한 번, 젊은 분위기로 또 한 번 취기에 흥을 돋우는 곳. 대학가나 번화가에 꼭 하나씩은 있는 이곳이 으레 일본인이 운영하거나 일본인을 사사한 누군가가 운영하겠거니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고정관념이다.
한자로 '金太郞'이라 쓰고 일본말로 '긴타로'라고 읽는 꼬치구이 전문점은 창업 전 일본이라고는 책으로만 접했을 정도로 일본과 무관한 삶을 살았던 김선균(35) 사장이 만든 부산 토종 브랜드다.
책 보며 만든 요리 일본인 비웃음
오기 발동 8개월간 새 메뉴 개발
부산영화제로 입소문 점포 23곳
김 사장은 중학교 시절부터 부산지역 유명 고깃집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언젠간 자신도 고깃집을 운영하리라 꿈을 키워 왔다. 군 제대 이후 일식집 주방 등을 전전하면서도 이 꿈을 저버리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에게 쉽사리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 줄에 접어들 무렵 그는 '고깃집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적은 자본으로도 창업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꼬치구이를 주메뉴로 하는 일본식 선술집.
그동안 모아 두었던 1천500만 원에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금 3천만 원을 보태 부산 중구 중앙동에 '긴타로'라는 이름으로 꼬치구이 전문 선술집을 낸 것이 2007년이었다.
"딱히 꼬치구이에 대해 잘 알았던 것은 아니었고요, 일본 책을 보면서 연구 끝에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긴타로는 이국적인 인테리어로 인해 호기심을 끌면서 일본인들까지 드나드는 곳이 됐지만 곧 일본인들의 항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 꼬치 거저 줘도 안 먹어요."
오기가 발동한 그는 그 후 8개월 동안 꼬치구이 메뉴 개발에만 새로 매달렸다. 그렇게 만든 메뉴로 일본인 손님이 올 때마다 평가를 듣고 불만족이 쏟아지면 무릎을 꿇고 조언을 청하기도 했다.
그런 시행착오 끝에 개발된 꼬치구이 메뉴는, 불만을 표시하며 젓가락을 던져 놓고 가게 문을 나가버리던 일본인들조차 어느새 "스고이(훌륭하다)"라고 인정할 수준에 이르렀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 해운대에 2호점을 내고 반응을 살폈다.
각고의 노력이 보상을 받은 것일까. 부산국제영화제 동안 긴타로는 부산을 찾은 외지인들로부터 부산에서 가 볼 만한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그 이듬해부터는 연예인들까지 잇따라 방문하면서 '꼬치구이=긴타로'라는 명성을 얻었다. 단골들이 가세해 너도나도 점포를 내겠다는 통에 서면으로, 연산동으로, 덕천동으로 잇따라 점포가 늘어났다.
5호점을 돌파한 이후 김 사장은 체계적인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교육 시스템과 물류 시스템을 새로 만들었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한 번도 요리를 해 보지 않은 30, 40대가 많다 보니 꼬치구이에 대한 노하우를 가르쳐야 했습니다. 신선도 높은 식자재를 공급할 체계도 갖춰야 했고요."
관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난 이후 긴타로는 최근까지 부산지역에서만 19곳, 창원과 울산, 김해, 양산에 4곳 등 모두 23곳으로 점포가 늘어났다. 그는 점포 수가 늘어난 것보다 점포마다 월 평균 4천만 원이 넘는 매출을 고르게 올리고 있다는 점이 더욱 다행스럽다고 했다.
"부산, 경남지역에서 일군 긴타로의 명성을 발판 삼아 가까이는 경북, 멀리는 수도권까지 긴타로가 부산 토종 꼬치구이 전문 선술집으로 우뚝 서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고깃집을 꿈꾸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던 청년이 만든 토종 브랜드는 이제 더 큰 세상으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이상윤 기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