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그를 위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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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독일에서 돌아온 지 8년이 지났다. 영혼이 자유로운 그가 잠시 머물 것 같던 회사와 부산에서 용케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지금까지 한 일들을 보면 대견하다. 웬만한 도시건축 일에 감초처럼 끼어 말하고, 설계하고, 글을 써왔다. 많은 포럼을 만들고,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문화까지 넘나들려 했다.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느냐 물으니, 의미나 재미가 없으면 사는 것 같지 않단다. 필요하면 만들고, 더 좋을 수 있으면 버려야 한단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말투에 욕도, 오해도 많아 마음은 상처투성이지만, 긍정적인 성격은 모든 것을 좋게만 해석한다. 왜 이리 겁 없느냐 물으니, 귀국할 때 3만 원뿐이었던 자기는 더 잃을 것이 없단다. 돌이켜보면 좋은 사람, 하고 싶은 일 모두 얻은 것이고 감사할 뿐이란다.

요즘 그를 보면 예전 같지 않다. 다크서클이 가시질 않고, 혼자 바다에 나가는 일도 잦아졌다. 이젠 나이가 들었나? 쉼 없이 달려 에너지와 샘이 마른 것일까? 아직도 만나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지만, 마음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희망인데, 사람이 제일 힘들단다. 사랑이 전부인데, 사랑이 제일 어렵다 한다.

귀국 10년 되는 해. 그를 위해 선물을 주려 한다.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들이 기억났다. 자기를 위한 인생의 중간 정리. 사랑의 감정을 정리할 시집, 배우고 느낀 것을 정리할 책…. 그렇게 잠시 인생을 뒤돌아 볼 마음의 유배를 보내려 한다. 흐를 때가 있으면, 고일 때도 있듯이 그렇게 힘을 얻고 돌아와 그토록 바랐던 자기 집 짓는 일과 죽기 전에 꼭 하고 싶다던 영화 만드는 일을 시작할 때까지…. 그때까지 부디 잘 지냈으면 한다. 이젠 그도 자기를 진정 사랑했으면 한다.

김승남 건축사

※다음 주부터 이병순 소설가의 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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