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선' "반드시 결혼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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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선' 시네마 달 제공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는 '행동하는 지성' 시몬 드 보부아르와 젊은 시절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이들은 처음에는 딱 2년만 살고 헤어지자고 했다. 우리 표현으로는 '동거'였지만 이들은 '계약결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2년 뒤 30세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그 사이 둘은 자유로운 연애를 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말년까지 반려자로 함께 했다.

우리나라는 행정 서류로 입증하지 않으면 부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처럼 결혼이라는 형식적인 굴레를 벗어나 자유롭게 한 방을 쓰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지민 감독의 '두 개의 선'은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 같은 다큐멘터리다.

동거 커플 다룬 다큐멘터리
임신 뒤 갈등·출산·육아 기록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일을 하는 지민과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는 철은 6년째 동거해 온 커플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들은 결혼제도를 거부한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넘어 집안과 집안의 관계가 되어 버리지 않느냐고, 그 속에서 정작 당사자들의 관계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냐고 이들은 질문한다. 또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이란 남자에게 남자의 역할을, 여자에게 여자의 역할을 강요하는 틀이 아니냐고 묻는다.

기존 제도에 저항했던 커플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고민은 더 깊어진다. 아이를 낳아서 출생신고를 하는 절차부터 현실적인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동거와 혼전 임신을 다룬 이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주인공인 지민 씨가 실제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된 고민과 갈등, 출산과 육아까지의 치열한 기록을 담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은 그런 점에서 착안했는데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난 '두 개의 선'에서 따온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둘은 임신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개인의 삶과 인식 체계를 옭아매는 결혼이란 기존 제도를 거부하려던 이들의 저항은 결국 아이의 탄생을 전후해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무엇보다 선천성 이상으로 태어난 아이의 수술을 위해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혼인신고를 하게 되는 것.

선진국과 달리, 법적인 혼인 관계에서 나온 아이만을 복지의 기준으로 삼는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는 기존 질서에 도전했던 주인공들이 아이 때문에 점점 순치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정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똑같은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 대한 선택은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9일 개봉. 김호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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