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화상(畵商)의 구수한 입담으로 푼 미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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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화商)은 장(場)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미술인에게)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화상이다. 미술품 거래에서 단순 이익만 노리는 사람은 화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림 장사꾼일 뿐이다."

화상들이 한 번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40년 가까이 부산에서 화랑을 운영해 온 신옥진(65·사진) 부산공간화랑 대표가 최근 펴낸 산문집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산지니)에 담겨 있는 내용의 일부분이다. 신 대표는 3년 전에는 '사람들은 걷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흘러가고 있었다'라는 잠언집을, 지난해 7월엔 화랑을 운영하면서 만난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를 전시도록처럼 꾸민 시집('빛난 하루')도 낸 바 있다.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
'진짜 같은…' 산문집 출간


그가 이번엔 미술계의 이모저모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현장감 넘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특유의 구수한 입담을 섞어 풀어낸다. 곳곳에 저자의 솔직 담백한 고백이 양념을 더해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화상이 본 미술세계'에서는 현재 미술계의 흐름이나 미술품 유통시장의 변화, 디지털시대를 맞아 변화된 미술품 제작 환경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가운데 "화상은 결코 그림만 파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지난 37년간 화랑을 경영해오면서 지인들에게 직접적으로 그림을 권유한 적이 거의 없다. 다만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작품들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그런 작가들을 선별하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밝은 그림만 찾는 요즘 세태도 꼬집는다. "그림을 장식품처럼 수집하는 요즘의 세태는 고뇌가 서린 어두운 색채의 그림을 회피한다(중략). 우리는 지금 그림을 수용하는 자세가 본궤도를 벗어나서 한쪽으로 잘못 치우친 것 같다."

미술계 거장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묻어나 있다. 책 2부 '화상이 느낀 작가세계'에서 저자는 개인적 견해라는 전제를 단 후, "이중섭이 천재적 작가라면 박수근은 위대한 작가"라 했다. 또 장욱진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그 유형이 없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달관에 이른 차원"이라 극찬하고 있다. 과연 누가 최고인가?

삶에 대한 소중한 사색의 글도 맛볼 수 있다. 3부 '화상의 주변 이야기들'은 개인 신옥진의 고민, 삶에 대한 생각들을 한올 한올 풀어놓았다. 나이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건지,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허무감, 버림과 비움에 대한 실천 등 인생 후반부에서 바라본 세상사 고민이 묻어 있다.

신옥진은 미술품 기증으로도 유명하다. 수십억 원어치가 넘는 미술품을 호기롭게 기증하고 나서 몇 날 며칠을 끙끙거리며 왜 그랬을까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하는,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범부이기도 하다. 화상이 아닌 일개 범부로서 느낀 삶에 대한 소중함도 솔직담백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다시 그의 말이 기억난다. "화상은 그 지역 그 시대 미술의 흐름이 왜곡되지 않게 길을 잡아주는 '바람잡이'이다." 정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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