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신춘문예-시] 나비가 돌아오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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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돌아오는 아침                     -허영둘



젖은 잠을 수평선에 내거니 새벽이다

밤사이 천둥과 함께 많은 비가 내렸다

예고된 일기였으나 어둠이 귀를 키워

여름밤이 죄처럼 길었다

생각 한쪽을 무너뜨리는 천둥과 간단없는

빗소리에 섬처럼 엎드려 나를 낭비했다



지난봄, 바다로부터 해고통지서가 날아왔다 세상은 문득 낯설어졌고 파도는 사소한 바람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코발트블루 바다는 손잡이 없는 창窓, 절망보다 깊고 찬란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의 슬픔도 그토록 찬란했을까 나는 구름 뒤에 숨어 낮달처럼 낡아갔다 들판의 푸른 화음에 겹눈을 빼앗긴 나비를 기다리며 나는 오지 않는 희망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바다가 깨어난다

졸려도 감을 수 없는 희망

돌아서는 파도의 옷자락을 따라가면

거룩한 경배처럼 엎드린 섬들

나는 존엄을 다해 아침 바다의 무늬를 섬긴다

희망이란 소소한 풀잎이거나

날 비린내 풍기는 고깃배의 지느러미 같은 것

풀잎도 계단도 허리까지 젖어 궁리가 깊다

밤새운 탕진에도 하늘이 남아 드문드문한

구름 송이들은 젖은 마음을 문지르는 데 요긴하겠다

마루 끝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

담장 아래 칸나의 방에 볕이 붉게 들고

거미는 방을 훔치는 수고를 덜겠다

느슨하던 수평선도 다시 팽팽해져 나비를 부르고

고깃배 한 척 안개를 젖히며 희망처럼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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