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친구집 2달간 '쑥대밭' 만든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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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김 모 씨의 아파트가 10대 딸 친구의 무단침입으로 난장판으로 변했다. 해운대경찰서제공

현관문 비밀번호 관리 한번 허술하게 했다가 멀쩡한 아파트가 흉가로 변하는 일이 발생했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남편의 새 부임지로 이사하기 위해 지난 8월 출국한 주부 김 모(44·여) 씨 가족. 두 달 만에 한국에 들른 김 씨는 부산시 해운대구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고급 소품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두었던 아파트가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던 것이다.

미리 알아낸 현관문 비밀번호로 무단침입
귀중품 박살, 마루에 불까지… 22명 입건


경찰 수사결과 김 씨의 집을 흉가로 만든 범인은 중학교 1학년 딸의 친구 박 모(13) 양이었다. 김 씨 가족이 1년간 외국에 머물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박 양은 김 씨의 집을 드나들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어깨 너머로 몰래 외워두었다. 김 씨의 가족이 8월 26일 출국하자 박 양은 사흘 뒤인 29일부터 김 씨의 아파트를 제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박 양이 동네 선배 정 모(14) 군 등 2명을 불러들인 것을 시작으로 또래 학생들이 순식간에 김 씨의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친구가 친구를 부르고, 그 친구가 다시 다른 친구를 불러들였다. 김 씨의 빈 아파트는 순식간에 부산진구와 금정구 일대 비행 청소년의 아지트로 전락했다.

2개월간 주인이 찾지 않는 집에 기거하면서 이들은 고급 아파트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러시아에서 구입한 500만 원 상당의 유화 2점은 칼로 찢기고 발로 밟혔다. 1세트에 200만 원이 넘는 체코산 크리스털 잔들도 이들의 장난에 박살이 났다. 안방에 있던 금목걸이 등은 귀금속상의 손에 넘어갔다. 거실 마룻바닥에 캠프파이어 하듯 불을 피우기도 했다. 진열장에 있던 양주를 꺼내 마시다 지치면 안방 침대에 들어가 잠을 자는 등의 철없는 행태가 두 달간 이어졌다. 집계된 피해액만 3천만 원에 달하지만 피해 물품에 정확한 가격 판단이 어려운 미술품 등이 끼어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훨씬 상회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주거지 무단침입 등의 혐의로 이번에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학생만 6개 학교, 22명. 경찰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이들을 검거해 공범 여부를 조사하는 데만 2개월이 걸렸다.

해운대경찰서 관계자는 "오토락이 편리하긴 하지만 비밀번호가 노출될 경우 기존의 잠금장치보다 더 허술한 측면이 있어 아이들이 비밀번호를 노출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어야 한다. 특히 장기간 집을 비울 때는 비밀번호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권상국 기자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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