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은 아프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정희준 동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주말에 가족을 차에 태우고 해운대로 향했다. 그런데 해수욕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서 15분인 거리를 차로 15분 걸렸다. 사실 휴일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다. 그런데 해수욕장의 서쪽 끝 마린시티엔 최고 80층짜리 1천800여 세대 아파트와 최고 72층 1천650여 세대 아파트단지가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해수욕장 동쪽 끝엔 53층짜리 2천400세대 아파트가 우리의 정겨운 달맞이고개를 마구 파헤치며 올라가고 있다.

마린시티는 이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의 형상이다. 나는 이렇게 빽빽하고도 숨막히는 마천루를 본 적이 없다. 거기에 도시계획이나 주변과의 조화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막개발'이다. 해수욕장 저쪽의 달맞이고개는 부산에서 가장 '아픈 곳'이다. 그 아름답던 곳이 무계획 난개발로 인해 다 깎여 나가고 시멘트로 덮였다. 십 년 만에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그런 달맞이고개 위에 53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아홉 개가 올라간다. 그런데 요즘 듣자 하니 해수욕장 바로 코앞엔 무려 108층짜리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다고 한다. 제 정신이 아니다.

위에 언급한 아파트들이 현실화 되면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만 거의 7천 세대가 새로 유입될 것이다. 가구당 4인으로 계산하면 3만에 가까운 인구 유입이고 자동차는 적어도 일만 대가 추가된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가. 지난 일요일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산시 교통국장은 "저도 참 걱정입니다" 하며 장탄식을 내쉬면서도 실질적 대비책은 내놓지 못했다.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지역은 가까운 미래에 인파로 미어터지고 차가 꼼짝 못하는, 부산의 대표적 문제지역으로 부상할 것이다.

부산시는 이러한 막개발에 대해 '지역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아니다. 그건 지역을 거덜 내는 거다. 그리고 서울, 인천에서는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을 업자들이 짓겠다 해도 지차체가 제동을 거는 판국인데 왜 부산은 온갖 특혜 의혹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가. 세계 어느 해수욕장이 백사장 앞에 108층짜리 빌딩을 들여놓는가. 10층짜리도 찾기 힘들다. 세계 어느 도시가 산 위에 53층짜리 아파트를 짓는가. 봉수대 만드나.

나는 부산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때로 슬퍼하고 때로 분노한다. 오륙도 앞의 절경을 깎아지르고 오만하게 들어선 아파트를 보라. 자연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괴물이다. 나는 영도에서 이 괴물을 확인하고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슬펐다. 시내로 가다가 황령산 허리를 자르고 들어선 스키돔을 본다. 그것은 아름다운 부산을 물어뜯는 짐승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 역시 지을 때는 '지역발전'이라고 신나게 떠들어댔지만 개장 후 곧 부도가 나 지역주민 여럿 피눈물 나게 했다.

최근엔 이기대가 마구 파헤쳐지더니 난데없이 고급식당이 들어섰다. 부산시민이 자주 찾는 부산의 명소를 가차 없이 밀어버리고 들어선 것을 보면 그 주인이 꽤나 '센 분'이구나 하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가 황당하게 느끼는 그런 괴물들은 시민이 안중에도 없을 때 출현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분노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일 뿐 아니라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고 부산의 미래를 절단 내는 짓이다.

공무원들은 항상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산의 법은 왜 꼭 그 모양인가. 그리고 그 법은 도대체 누가 만들고 누가 고치는가. 부산 미래의 적은 바로 부산시가 아닌가 싶다.

건드리지 마라. 지금 다 거덜 내지 말고 제발 남겨 놔라. 똑똑한 우리 후세가 무어라도 해 볼 테니 그들을 믿고 제발 건드리지 마라. 이제 아무 것도 하지 말란 말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