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관 칼럼] 해운대 개발이 마뜩잖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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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해운대 위에는 산이 푸르고/해운대 밑에는 물이 아득한데/내 일찍이 역마 타고 경쾌히 한 번 올라보니/황홀함이 마치 나를 신선향에 앉힌 듯했네/(중략)/나는 남쪽 끝 해운대 하늘을 생각하면서/서글피 바라보며 가려 해도 갈 수 없어라/해운대 위에는 만 가닥 우뚝한 구름이요/해운대 앞에는 한 바퀴 밝은 달뿐이로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 문인이자 관료였던 서거정(1420~1488). 언젠가 남도(南道) 유람길에 들른 해운대를 자신의 시문집인 '사가집(四佳集)'에서 신선들이 노니는, 그런 황홀한 곳으로 묘사했다.



상업적 이윤 추구하는 세태가 난개발 부채질
'천년 절경' 훼손 심각한데도 반성·개선 없어



9세기 신라의 학자 최치원. 동백섬에 누대를 짓고 자신의 자(字)를 따 해운대라 했다. 이후 숱한 인사들이 해운대의 아름다운 경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고려 말기의 무신 정포(1309~1345). '바람이 부드러우니 파도가 잔잔하네. 고목은 바위에 기대어 섰고, 장송(長松)은 길을 끼고 마중하네'라고 헌시(獻詩)했다. 조선 전기의 문신 권반(1419~1472). '대마도는 눈썹같이 푸르게 보이는데, 크나큰 하늘과 땅이 가슴속에 들어오네'라고 노래했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엄(1719~1777). 자신의 여행기 '해사일기'에서 해운대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는 '대 앞에 암석이 3면을 둘러싸서 층층 나고 굽이져 천 명 쯤 앉을 만하며 전면이 광활하여 바로 대마도와 맞대고 중간에 한 가지 물건도 가린 것이 없다. 그래서 마치 헌칠한 장부가 흉금을 드러내 놓고 천만 가지 형상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해운대 일대는 남녘의 한적한 갯가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과거 절경 중의 절경으로 손꼽혔다. 수목이 울창한 데다 사위(四圍)에 막힘이 없는 동백섬, 눈부신 백사장, 저녁달 조망의 경승지인 와우산(臥牛山), 그리고 찾는 이를 마중이라도 하듯 해안길을 따라 펼쳐진 거목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멋진 광경! 그야말로 선경(仙境)이 따로 없을 만큼 장관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누대는 없어졌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해운대는 대한민국의 걸출한 명소요,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명성을 떨친다. 부산의 관광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해운대가 없는 부산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해운대의 경관이 여전히 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시심(詩心)을 자극할 만큼, 선조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개발 과정에서 각종 상업용 건물과 아파트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섰다. 특히 1978년 문을 연 동백섬 입구의 조선비치호텔은 해운대 전체의 경관을 볼썽사납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지적이 많다. 당시 특혜 논란도 있었다. 게다가 인근 수영만 매립지에 초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백섬의 육지 연결 방향은 호텔과 고층 아파트에 포위된 형국이 되고 말았다. 달맞이 고개로 널리 알려진 해발 183m 높이의 와우산 정상에까지 최고 53층의 재건축아파트 단지 건설이 한창이다.

해운대는 여유로운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미 과밀 상태다. 지금부터라도 해운대의 경관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산시나 해운대구청의 개발 위주 정책은 여전하다. 이마저도 환경 친화형이 아니라 난개발에 가깝다. 이러한 현실은 해운대를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운대의 면모가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를 엄청난 공사까지 추진 중이다. 6만 5천여 ㎡ 부지에 108층짜리 상업용 건물과 87층짜리 초고층 주거 건물 등이 들어설 예정인 해운대관광리조트. 무려 3조 4천억 원의 돈이 들어간다는 이 사업은 최근 부산시의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2016년 완공이 목표다.

부산시는 해운대를 4계절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사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산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들 초고층 건물이 경관 훼손은 물론이고 백사장 파괴와 교통 혼잡 가중을 불러 해운대를 죽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관광리조트가 과연 해운대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진행된 개발 사업 대부분이 경제적 이윤만을 노렸을 뿐 진정 해운대를 위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토론이나 시민 공청회 한 번 거치지 않고 관광리조트를 밀어붙이고 있는 부산시의 행정은 매우 실망스럽다.

부산에는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들어선 고층 아파트나 대형 건물들이 너무 많다. 도시 공간이 무질서하고 이미지도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문명 비평가며 도시 연구가인 루이스 멈포드는 "정신이 도시 속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거꾸로 도시의 모습은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상업적 이윤만을 추구하는 세태가 '천년 절경' 해운대까지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로 마뜩잖고 두렵다. lm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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