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기상의 날, 예보 신뢰 높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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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백 지역사회부 차장

지난 일요일 평소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던 친구와 모처럼 점심 자리를 함께 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북적대는 식당 분위기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이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불쑥 "이래 가지고 무슨 IT 강국이고, 선진국이냐"며 큰소리로 불평부터 늘어 놓았다. 첨단과학이 어떻고 한참을 떠든 뒤에야 내용파악이 가능했다.

'내기'라면 종목과 상관없이 죽자고 덤벼드는 이 친구는 일요일 오전 지인들과 내기 경기가 예약돼 있었는데 비 때문에 못하게 된 모양이다. 평소 일기예보를 잘 믿지 않던 그는 "뭐 이번에도 예보가 빗나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기상대 예보가 맞았다"고 불평한 것이다.

이 친구의 기분을 더 상하게 한 것은 만에 하나 기상대 예보대로 일요일 비가오게 되면 그동안 주말마다 운동간다고 늘 불만이던 가족들에게 이참에 점수라도 딸 겸 '가족 외식'을 약속했는데 '황사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이 마저도 연기해 버린 것. 이날 경남지역에는 비는 내렸으나 황사는 없었다.

"'슈퍼컴퓨터'에 외국전문가 영입은 뭐냐"며 한번 오른 열기를 좀체 식히지 못하는 친구를 보면서 "예보를 잘하면 잘한대로 소리듣고, 잘못하면 엉터리로 매도되는 기상청 불신이 이 정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일기예보와 관련한 불만은 비록 이날 이 친구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면 한번쯤은 불만을 내 뱉어 본 경험이 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 까지 나서 불만을 표시했을까. 이명박 대통령 집권 초기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기상청 일기예보가 오늘도 맞지 않는다"고 질타해 기상청이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이후 기상청은 슈퍼컴퓨터를 추가로 도입하고 미국에서 기상전문가를 초빙하는 등 '정확도 높이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사실 대통령의 불만이 아니더라도 날씨는 현대인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산업,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여기에다 최근 일본 대지진 여파로 기상청을 보는 눈길이 더 매서워졌다.

이를 의식한 듯 기상청은 올해 기상의 날인 23일 앞두고 국민들의 관심을 끌만한 다양한 행사와 함께 '기상예보의 정확성이 높아졌다'는 홍보성 자료도 내놓았다. 1~3시간 전 동네예보의 정확도 90%를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기상청이 예보의 정확도를 얼마나 높이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상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은 컴퓨터 몇대 들여오고 전문가 한 두명 보강한다고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 대기과학은 물리학이나 화학 처럼 같은 조건을 대입한 반복적 실험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슈퍼컴퓨터는 하드웨어를 향상시킨 것으로, 병원에 최신식 MRI기계로 모든 환자를 낫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숙련된 예보관 확보와 수치모델, 정확한 관측자료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질때 예보의 정확도가 높아질 수 있다.

결국 꾸준한 투자와 노하우가 축적돼야한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그동안 예산상의 이유로 투자에 인색하고도 기상산업마저 키우지 못해 후진성을 면치못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안고 있는 기상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상예보 정확도는 높여야만 하고 이를 통해 대국민 신뢰도 쌓아야한다. 올해 기상의 날이 그 출발점이 되고, 우리 모두는 가족 다음으로 일기예보를 신뢰한다는 일본인의 관용과 이해 자세를 벤치마킹하는 날 이었으면 한다. jeong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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