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U] 동보서적 문 닫던 날-그 10시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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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마감한 동보서적 본점의 마지막 10시간

"응- 동보서적에서 만나!" 이젠 그것마저도 추억이 되고 말았다. 부산지역 최대 서점 중 하나인 동보서적 서면점(본점·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이 서른 살 생일을 불과 두 달 남겨놓은 지난 9월 30일로 문을 닫았다. 평소보다 두 시간 줄어든 마지막 영업일 10시간을 부산닷컴(www.busan.com) 'TV-U' 카메라가 기록했다. '동보서적 문 닫던 날-그 10시간의 기록'으로 들어가보자.

부산 서면 한복판에서 30년 동안 영업하다 지난달 30일로 문을 닫은 동보서적. 폐점일 풍경 '10시간'을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김은영 기자·윤민호 프리랜서 yunmino@naver.com
지난달 말 사라진 문화의 공간
아쉬운 마음 시민 발길 이어져
"할 만큼 버틸 만큼 최선 다했다"


# 개점 전

영업 시작 15분 전. 직원들은 책을 정리하는가 하면, 빗자루와 걸레질을 하고 있다. 마지막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개점 준비다. 1층 카운터의 최고 고참 김영미 씨도 애써 담담한 표정이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야죠." 영미 씨는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입사했으니 동보서적이 첫 직장이다.

# 10:00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들어왔다. 마지막 영업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객들은 독서삼매경이다. 전공서적 코너에서 만난 김다혜·정현서(이상 동의과학대 유아교육과 2년) 씨에게 말을 붙였다. "책은 직접 보고 구입하는 게 좋아서 동보서적을 찾는다"는 다혜 씨. 현서 씨는 "(동보서적이 없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어요"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 11:00

동보서적 옆건물 5층의 사무실. 팀장 다섯 명이 머리를 맞댔다. 매장 영업은 이날로 끝나지만 반품 등 뒤처리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예상 기간은 한 달 정도. 하지만 군소 출판사와 도·소매상 등 거래처만 1천~2천 곳에 달한단다. 벽에 붙은 동보서적 폐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울적함을 더한다.

# 12:00

다시 매장. 도서관 납품 작업이 한창이다. 다들 입밖에 꺼내지 않아서 옛날 생각이 날 법하다. 1980년 12월 3일 100평 규모에서 시작한 동보서적. 이후 수차례의 확장 공사 끝에 3층 전관 600여 평 규모에 65만 권 이상의 책을 보유한, 지역 최대 서점으로 성장했다. 부산청소년연극제 등 각종 지역 문화행사를 주최, 후원하면서 '문화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다. 하지만 2010년 쓸쓸한 퇴장을 앞두게 되었다. 


# 13:00

2층 사진 코너에서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김효민 씨를 만났다. 동보서적의 마지막 순간을 담기 위해 찾았단다. "그동안의 정도 있는데 두 번 다시 못 올 것 같아서 왔다"는 그는 "정말정말 미칠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그는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어진다니까 좀더 잘해주었으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 14:00

이번엔 동보서적 정문 입구에서 건장한 청년 우혁진 씨를 만났다.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 거주한다는 우 씨는 "제 나이와 같은 동보서적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면서 동보서적 간판을 한참동안 디카에 담았다. 


# 15:00

이동근 씨는 학원강사였다. 그의 손에도 카메라는 들려있었다. 밤 9시는 돼야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조퇴'를 감행했단다. "여행을 특히 좋아한다"는 이 씨는 여행 코너 앞을 서성댔다. "미안하고…좀더 많이 구입 했더라면…문을 닫는다니까 많이 섭섭합니다."

# 16:00…17:00…18:00

서점 앞에 카메라를 고정했다. 매장 실내외는 고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텅 빈 책꽂이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 백일호 영업부장도 카메라를 들고 매장에 나타났다. 25년 단골 김성철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저의 육신이 하나 떨어져 나가는 기분입니다. 동보서적은 단순히 서점이라기보다는 문화공간으로써, 만남의 장소였는데…다른 서점도 동보서적과 같은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노파심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 19:00

반품 작업은 하루종일 계속됐다. 종일 묵묵부답이던 백선호 계장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 문 닫는 것 같아요. 어차피 책은 돈 갖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시민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고, 휴식공간도 되고…돈만 보고는 이걸 못하죠."

# 19:30

"…저희 동보서적은 지난 30년 동안 발전하는 부산의 아늑한 문화공간이 되고자 항상 노력해왔습니다…오늘로써 동보서적 서면점이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안내방송을 하는 이은정 씨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침에 출근해서 책 사이를 거닐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박현주 팀장은 '"동보서적은 할 만큼, 버틸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서 "(동보서적아)이제 푹 쉬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함께 있던 강숙정 계장은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 20:00

마지막 손님은 김계정(67) 씨였다. '재고를 한 권이라도 줄여주고 싶은 독자 마음'이라며 무려 15권의 책을 샀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직원들은 어떻게 해요?" 모든 손님이 매장을 나가자 폐점 플래카드도 나붙었다. 미처 소식을 접하지 못한 시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경진(덴타피아 치과 원장) 씨는 "어렵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책을 좀 더 많이 사주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임직원들끼리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시작은 제가 했지만 여러분이 만든 동보서적입니다…"(김두익 동보서적 대표), "여러분과 오랫동안 함께할 줄 알았는데 대단히 죄송합니다"(백일호 부장)…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동보서적의 마지막 영업은 이렇게 끝이 났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끝끝내 거부했지만 어떤 분은 그랬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변신과 혁신을 다하지 못한 동보서적에 일차적인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대형서점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부산 문화 수준의 척박함이나 지방정부의 정책적인 배려나 관심 없음은 무척 아쉽다"고. 제2, 제3의 '동보서적' 사태만은 막아야 하는 것이 남은 이들의 의무일 것이라고.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영상=황수형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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