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주는 짐승 아닌 친구, 주민과 공존이 성공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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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사업 10년 성과와 과제

지리산에서 자연적응 중인 반달가슴곰. 사진제공=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 복원센터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는 길목 성삼재 마루가 안개와 구름에 휘감기고, 끝자락 장마 비가 흩뿌리던 지난달 21일,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의 남부권 중심인 전남 구례 화엄사 앞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 복원센터는 차분했다. 얼마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두마리가 폐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 터라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곳이어서 초상집 분위기일 것이라는 기자의 섣부른 예견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지난해 11월 새로 지어 입주한 종복원센터 청사건물이 지리산 신록, 계곡과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이곳이 멸종위기에 처한 반달가슴곰과 산양 등을 회생시키기 위한 시설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2층 사무실내에서 대형 유리창을 통해 동편에 반달곰 계류장과 생태학습장 울타리가 바로 내려다 보이고, 생태학습장을 어슬렁거리는 돼지만한 반달가슴곰 몇 마리를 보고서야 여기가 멸종위기종 복원센터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29마리 방사, 올무 등에 10마리 폐사
자연출산 성공… 16마리 자연적응 중
명예보호원 지정 · 관광자원화 노력을

방문자 신분을 확인한 뒤 사무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양두하 복원연구과장을 만났다. "반달곰이 자꾸 죽어나가는데, 종복원사업이 제대로 되긴 되는 겁니까?”인사를 대신해 질문부터 던졌다.

호남형 얼굴에 안경을 낀 그가 "인간의 개입으로 회복 불능상태가 된 자연을 인간의 손으로 치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당연히, 또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지리산에서는 2001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멸종위기종 복원사에 일대 획을 긋는 의미있는 뉴스가 전해졌다. 2005년 북한에서 도입해 방사했던 반달가슴곰 두 마리 (NF-08, NF-10)가 지리산의 자연상태에서 새끼를 출산했던 것. 이는 한국 고유종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첫 결실이라 종복원센터는 물론 학계와 국민 모두가 기뻐했다. 하지만, 얼마뒤 새끼곰을 낳은 어미곰이 동면굴에 스며든 물기를 제거하다 탈진해 죽고, 이어 새끼곰도 폐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또 지난 한달동안에만 국립공원 구역 밖에서 농약과 올무에 의해 두마리가 폐사했다. 죽은 곰 중에는 2007년, 2008년 올무에 걸렸다가 구조된 뒤 지난해 야생상태에서 새끼를 낳아 곰 복원사업에 청신호를 던졌던 6년생 암컷(NF-08)도 포함돼 있었다. 이번에는 죽음의 덧인 올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2004년 처음 러시아 연해주에서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된 칠선이와 제석이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실패 사례이다.

칠선이는 2005년 야생에 방사되었다가 사람을 너무 잘 따라 회수됐고, 제석이는 올무에 걸려 치료를 받다 인간의 과도한 손길에 길이 들어 결국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함으로써 종복원센터에 좋은 교훈이 됐다.

2004년부터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 29마리 가운데 그동안 15마리가 폐사(10마리), 실종(1마리) 또는 회수(4마리)돼 지금은 어른 곰 14마리와 새끼 2마리 등 모두 16마리만 생존해 자연적응 중이다. 종복원사업의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도 곰이 자연상태에서 태어나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42%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우리의 성적이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종복원센터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0마리는 생존해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하반기에도 중국에서 새끼 4마리, 어미곰 2마리를 도입하는 등 지속적인 방사를 통해 최소 생존개체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은 당국과 지리산권에 사는 지역주민이 실효성 있는 '공존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 매년 지리산 곳곳에서 농민이 쳐 둔 올무에 곰들이 잇따라 희생되고 있는 점을 보면 아직도 지리산 일대 주민들의 곰 복원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다는 것을 알수 있다. 지금까지 올무에 걸려 희생된 곰만 4마리에 이르고 농약과 밀렵으로 2마리가 죽었다.

주민과의 협의체인 반달곰지역협의회도 거의 가동되지 않고 있고, 지리산권역 각 자치단체들도 곰 복원사업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채 주민들 피해 여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행히 최근들어 전국에서 '반달곰 서포터즈'와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반달곰 서식지 안정화와 백두대간 생태축 연결사업을 위한 기부와 땅 매입 등이 추진되면서 주민 인식도 개선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2007년부터 곰 출현지역 마을에 '명예 곰 보호원'을 지정하고, 반달곰을 활용한 지역관광자원화 노력 역시 바람직한 '공존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 복원센터는 매우 젊다. 지리산의 푸른 신록처럼 조직에 생기가 돌아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이 센터를 이끌고 있는 송동주 센터장과 행정과장이 40대 중반으로 나이가 제일 많고, 나머지 직원은 대다수가 20~30대다.

2001년 멸종위기에 처한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되살리기 위한 첫 시도가 있은 후 한 사람, 두 사람 이 기구에 모여들었고, 2004년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채용된 인원이 대부분이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도 이들 직원들처럼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첫 구상부터 시행까지 10년, 본격적인 종 복원을 시도한지 5∼6년만에 자연상태에서 새끼를 낳는 성과를 거둔 것은 선진 외국에서도 찾기 힘든 성공사례라는 평가다.

이선규 기자 sunq17@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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