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껴라 우리 속 '검은 대륙, 붉은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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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춤으로 아프리카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는 IYF 레코팀. 그래픽=박나리 기자 nari@

영혼의 자유 … 아프리카 음악

아프리카 음악의 기본 악기, '젬베(djembe)' 치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 지난 주말 저녁. 해운대해수욕장 저 끝에서부터 경쾌한 북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는 장구보다는 묵직하지만 북보다는 좀 더 높고 경쾌하다. 가까이 다가가자 잠깐 연습만 했을 뿐인데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게 뭔가요?", "장구를 변형한 건가요?", "이런 건 얼마나 해요?"

"이건 아프리카 전통 악기 젬베라는 거고요. 악기 가격은 보통 10만 원에서 80만 원 정도까지 하는데 제 것은 60만 원 정도예요." 대학생 한진호(24) 씨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로 악기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한 씨는 부산 젬베 동호회 '우주를 여행하는 젬베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의 회장. 얼마 전 2년간 남미 지역을 여행하며 젬베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고 지금은 마음 맞는 이들과 가끔 해운대 등지에서 젬베를 치고 있다. 부산에서 만들어진 이 동호회의 회원은 동호회 개설 6개월 만에 벌써 30명을 넘어섰다. 이 중 실제로 젬베를 가진 이들은 7명 정도. 나머지는 최근 젬베에 흥미를 느껴 젬베를 배워보고자 모인 이들이다.

젬베는 서아프리카 전통 타악기로 린케, 하리 같은 아프리카 나무를 잘라 속을 파낸 뒤 그 위에 염소 가죽을 씌운 악기다. 맨손으로 퉁퉁 튕겨내듯 치면 경쾌한 리듬이 만들어지는데 아프리카에서는 결혼식, 성인식과 같은 축제에서 주로 연주된다. 그래서 젬베는 '기쁨의 악기'로도 불린다.

"얼마 전 서울 홍익대 앞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한 흑인이 다가와 저희들 박자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더라고요. 그런데 한참 흥이 오른다 싶었는데 그 사람 표정이 갑자기 싸해지더니 가버리는 거예요. 따라가 춤을 더 추지 왜 가느냐고 물었죠. 그 사람 말이, 너희들 표정을 봐라. 젬베를 연주하고 춤추는 사람은 즐거워야 하는데 너희들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거예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죠." 권이상(24·홍익대 수학교육과 2학년) 씨는 요즘 들어 젬베가 기쁨의 악기이자 소통하는 악기라는 점을 새삼 깨닫고 있다. "젬베는 혼자 하면 의미가 없는 악기예요.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젬베를 치거나 남미 콩가, 우리나라 장구, 서구 드럼 등 전세계 타악기를 모두 모아 치면 더욱 흥이 오르죠." 권 씨 스스로도 젬베를 치면서 성격이 많이 밝아졌단다.

기자에게도 젬베를 권한다. 젬베를 허리에 둘렀다. 8박자 연주에 오른손, (왼손 박자 한번 생략) 오른손, 왼손, 오른손 순이란다. 그런데 자꾸 오른손 다음에는 왼손이 나간다.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었다.

젬베로 치는 박자마다에도 각각의 의미가 있다. 예컨대 대표적 박자인 '모리바야사'는 여자가 안 좋은 일을 당한 뒤 허망하게 죽음을 생각할 때 '만약 상황이 기적처럼 좋아진다면 내가 망고나무 밑에서 기쁨의 춤을 추겠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박자. 모리바야사는 망고나무라는 뜻인데 그만큼 좋아서 미친 듯이 춤을 출 때 필요한 박자가 이 모리바야사다. '쿠쿠'는 남자들이 물고기를 잡아왔을 때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고생했다는 의미로 선사하는 춤의 박자다. 의미를 알고 나니 손놀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제 음악의 최종 목적지는 아프리카예요." 열정적으로 젬베를 치다 결국 피(皮)가 찢어지고 만 최지훈(30·남산고 교사) 씨. 최 씨는 음대에서 타악기를 전공하고 인디밴드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해 못 다루는 타악기가 없을 정도였지만 젬베에 대해서만큼은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두드리는 강도와 위치에 따라 세 가지 다른 음을 만들어내는 젬베는 각자의 개성에 따라 연주할 수 있는 영역이 넓고 타악기끼리도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악기.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악기라는 느낌이 들어요. 음악이 가야할 목적지가 결국 그거죠."


몸으로 취하다 … 아프리카 춤

"신기하게 음악만 틀어주면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취하는 느낌이랄까요. 춤을 추면서 웃기도 하고, 춤을 추면서 울기도 하죠. 심지어는 빨래 널면서도 춤을 추고 고구마를 팔러 돌아다니면서도 춤을 춘다니까요. 그 사람 고유의 감성이 춤에 녹아 있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지난 2월, 10개월간의 아프리카 자원봉사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오주호(21·신라대 국제무역학부 2학년) 씨는 잠비아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춤을 처음 봤던 느낌을 잊지 못했다.

"전혀 섹시할 것 같지 않은, 몸집이 큰 여성들이 엉덩이를 유연하게 돌려대는데 아, 정말 춤을 잘 춘다는 게 저런 거구나 싶었죠. 한국에서의 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보여짐을 중시하는 춤이라면 아프리카의 춤은 정말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느낌을 중시하는 춤이랄까요."

처음엔 쭈뼛쭈뼛했던 오 씨도 이내 아프리카 사람들 속으로 빠져들었다. 현지인들로부터 엉덩이춤도 직접 배우고 반대로 자신도 한국의 춤을 가르쳤다고.

신기하게도 아프리카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누군가가 춤을 추고, 한 명이 추면 나머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추기 시작한단다.

더욱 특이한 건 추임새. 뻐꾸기, 개구리 소리 등 동물 소리를 흉내내 추임새를 넣는데 그게 음악과 춤에 아주 잘 어울린다고. 추임새뿐만 아니라 입과 손으로 악기 소리도 만들어낸다.

춤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강렬한 탓에 오 씨는 직접 찍어온 아프리카 춤 동영상을 돌려보며 에너지를 얻곤 한단다.

오 씨처럼 IYF(국제청소년연합)를 통해 아프리카 자원봉사를 다녀온 대학생들은 레코(L'echo·울림)라는 팀을 만들었는데 그들에게서 배운 춤을 토대로 차없는 거리, 대학 축제 등 각종 축제 현장에서 공연도 하고 있다. 레코는 전국 공연팀. 부산에는 20여명의 팀원들이 있다. 부산팀의 연간 공연 횟수는 50회 정도. 최근에는 남아공 월드컵 분위기를 타고 공연 문의도 많아지고 있고 주변 친구들의 관심도 부쩍 늘어났단다.

"우리는 특별한 날에만 추는 게 춤이잖아요. 아프리카에서는 춤이 일상 생활에 배어 있어요. 장례식에서도 춤을 추죠. 춤으로 모든 걸 승화시켜내는 힘이 있어요."

서아프리카 세네갈에 자원봉사를 다니온 이혜진(23·여·부산외대 4학년) 씨 또한 아프리카의 춤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잊지 못했다. 특히 엄마와 딸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엄마가 즐거워하며 춤을 추니까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따라 배우는 거죠."

최근 아프리카 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에서는 '아프리카 댄스교실'도 문을 열었다. 대표적 아프리카 타악기 그룹인 쿰바야에서 젬베교실에 이어 연 것인데 젬베에 대한 관심 못지 않게 아프리카 댄스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글=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사진=김경현 기자 view@

동영상 busan.com

자연에 더 가까이 … 패션·화장

멀게만 느꼈던 아프리카,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아프리카지만 실생활에서 접하는 분야에는 의외로 많은 아프리카가 녹아 있다.

△패션=얼룩말 무늬를 본뜬 제브러 패턴이나 표범을 모티브로 한 레오파드 또한 아프리카 열대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동물들의 무늬를 따온 패션계 대표 문양. 이에 더해 원색 계열의 대비되는 컬러, 비비드한 느낌 또한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패션브랜드 나인식스뉴욕, 데코 등의 홍보를 맡고 있는 ㈜비주크리에이티브파트너스의 조화순 과장은 "올 여름 패션계에는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얻은 크고 강렬한 비비드 컬러가 더운 여름 시원한 포인트를 주며 경쾌하고도 발랄한 느낌을 연출해 내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현대백화점 매장의 김민아 매니저 또한 "올해 마크에서는 아프리카풍의 제브러 패턴, 레오파드 패턴을 많이 써 좀 더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영향을 적잖이 받아왔던 구두업계에서도 올해 내추럴한 느낌의 아프리카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다. 구두 브랜드 가버(Gabor)의 경우 뱀피를 사용한 애니멀 디자인을 많이 내놓고 있고 비즈 원석, 프린지 장식을 여름 구두 전반에 활용해 아프리카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또 가죽으로 매듭을 묶는 형태의 스트랩 스타일 또한 마사이족이 발에 붕대를 감는 느낌을 표현했다는 것이 가버 홍보를 맡고 있는 윤성원 실장의 설명.

이 같은 패션 트렌드에 맞춰 최근 현대백화점 등 백화점업계에서도 정글, 야자수, 얼룩말 등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레오파드 무늬의 옷 등을 전면에 배치해 아프리카 콘셉트를 최대한 살리고 있다.

△화장품=자연주의 바람이 불고 있는 화장품업계에서도 아프리카산 원료는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아이템이다.

피부를 부드럽고 촉촉하게 가꿔줘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마법의 원료로 통하는 '자이미니아 오일'을 넣은 더바디숍 '스파 위즈덤 아프리카 라인'은 출시 직후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며 모로코 남서쪽에서만 자란다는 생명의 나무 아르간의 오일을 넣은 모로코 라인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밖에 록시땅의 대표 천연원료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시어버터 또한 아프리칸 카리테 나무의 열매 씨앗으로부터 추출된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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