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도 무릎 꿇는 권력,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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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력 / 히로세 다카시

뉴욕 록펠러센터사진 제공=프로메테우스출판사·부산일보 DB.

책에 열거된 사람들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면 아마 저자는 종신형 선고로도 모자라지 싶다. 미국의 역사, 아니 세계 역사를 주물러 온 인물들을 죄다 모건과 록펠러 가문의 하수인 혹은 꼭두각시로 지칭했으니. 그것도 익명이 아니라 고유명사로 말이다.

일본의 지식인 히로세 다카시가 1986년에 쓴 '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란 책은 위험하다. 감히 계란으로 바위를 치겠다고 나선 용기는 가상하지만, 그가 쓴 책의 내용처럼 자본의 힘이 어디 그리 만만한가.

자본으로 본 미국과 세계의 권력
백안관도 독점재벌 하수인 주장
세계대전 자본 음모론으로 분석

저자는 JP모건과 록펠러로 대표되는 미국의 독점재벌이 어떤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행태를 저질렀는지, 그들이 세계경제를 어떻게 좌지우지했고, 그들에 의해 미국은 물론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조종되어 왔는가를 파헤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썼다. '20세기에 일어난 다양한 중대 사건들을 추려낸 뒤, 각 사건에서 도발적으로 행동을 일삼았거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본다. 다음으로, 이들의 표면적인 직함을 걷어내고 한 사람씩 가계도를 정리해본다. 이것은 이들이 자본가와 대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측한대로 결과가 나온 인재들이 모아지면, 그들의 행동을 차근차근 역사적 사실 위에 순서를 세워 짜 맞추어 간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진상을 '자본의 언어'로 다시 써보는 것이다.'

자본의 언어로 다시 쓴 세계사는 충격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집권, 매카시즘과 빨갱이 사냥, 제2차 세계대전, 원자폭탄 투하, 카스트로 집권과 쿠바사태,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 심지어 한반도에서 일어난 민족 비극인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대사건들 배후에는 어김없이 모건과 록펠러 연합이란 거대 자본의 음흉한 손길이 있었다는 거다.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에게서 산 구식 카빈총을 6배 가격으로 다시 되팔았다는 '죽음의 상인' 모건가의 행태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에 10억 달러를 빌려주고 30억 달러 어치의 군수물자를 구매하게 한 것에 비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전시 중에 모건상사가 거둔 순익 25억 달러는 GM 자동차를 두 개나 지배할 수 있는 금괴량과 맞먹는다. 모건상사에서 빌려준 돈으로 모건상사가 파는 무기를 사게하는 가공할 이중이익도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를 지원했다는 대목에 비하면 별게 아니다.

백악관 인재들의 숨겨진 직함을 벗긴 결과 역시 충격적이다. 20세기의 막을 올린 매킨리 대통령부터 레이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6대에 걸친 대통령의 내각에 모두 366개의 자리가 있는데, 이 가운데 290개 자리 79%라는 절대적 비율이 모건-록펠러 연합의 수족이란 것. 백악관의 인재들은 실은 정치가가 아니라 두 집안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과정에서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말로 위인 전기를 장식했던 에디슨의 추악한 뒷모습도 보인다. 타인의 특허를 가로채 자신의 발명품인 양 파는 것도 모자라, 경쟁사의 제품을 교도소에 납품해 '악마의 전기'로 낙인찍히도록 하는 교활한 행태까지 낱낱이 폭로된다. 물론 에디슨도 모건가문에 이용되다 버려진 처량한 신세가 되긴 하지만.

자본가의 인맥사슬을 파헤치며 자본주의 역사 해석의 새로운 장을 그린 이 책에선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단정적인 대목이 많다. 상상력을 동원한 비약과 아전인수격의 해석도 곳곳에 보인다. 록펠러가에서 한국전쟁의 개전과 종전 날짜를 정확하게 알았고, 사실상 그들의 손으로 촉발된 전쟁이란 결론을 내린 대목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역사서에서 따로 놀던 점과 점의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하나의 선으로 이어 자본주의 세계의 암호를 해독한 저자의 발상은 놀랍다. 짐작하다시피 제1권력은 자본이다. 히로세 다카시 지음/이규원 옮김/560쪽/2만5천원.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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