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종교계 시선] 궁합 맞는 불교 … 불편한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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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를 둘러싼 종교적 논쟁이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게 되는 계기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일보 DB

프랑스 철학자 쥘베르 뒤랑은 '상징적 상상력'이란 저서에서 "서구 문명은 초월적 현현에 대해서는 도그마와 교권주의, 상징을 통한 간접적 사고에 대해서는 개념을 통한 직접적 사고로 대응한다"고 갈파한 적 있다. 정교회의 이콘을 예로 들면, 로마 교황청으로 대표되는 서구 유럽의 눈으로 볼 때 이콘은 창조적 상상력에 의한 예술의 일부일 뿐이지 결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증거하는 전례물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동방의 비잔티움 정교회는 로마 교황청의 중심 지향적 교부신학을 거부하고 다양한 초월적 현존들을 용인한다. 중심을 해체한 것이다.

불교 "화엄 세계관 녹아든 작품"
기독교 "정령주의, 범신론 우려"
"종교 넘어선 문화" 다원론도


자본과 예술의 산물인 영화 '아바타'에 지금 종교가 그 시선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 역대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한국에서만 1천만 명이 봤을 만큼 영향력이 커진 데다, 내용 속에 종교적 의심을 제기할 만한 코드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나비족이 거대한 신수(神樹)에 엎드려 기도하는 장면은 그중 대표적이다. 신수는 생명의 나무다. 나비족이 상처 입거나 생명이 위태로울 때 신수는 정령의 기운을 모아 치유에 나선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를 연상시킨다. 숲의 정령들의 총체격인 사슴 모양의 신수(神獸)는 그 정령들의 기운을 응축해 생명을 치유하고 부활시킨다.

▶기독교=당장 로마 교황청이 우려를 표명했다. 교황청을 대변하는 일간지 '로쎄르바토레 로마노'와 '바티칸 라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자연 숭배와 연결된 정령주의 수렁에 빠졌다"고 비판한 것이다. 교황청의 우려는 자연을 신격화해서 범신론적 뉘앙스가 물씬한 영화 '아바타'로 인해 교회가 주창하는 유일신의 절대가치를 사람들이 제대로 용인하지 못할까 하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은 어디까지나 교회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통한 단 하나의 통로를 통해야 하는데, '아바타'는 그 가치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기독교 전체의 우려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기독교인이 영화에서 '우상숭배' '물신숭배'를 떠올리는 것이다. 자연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신대 신학과 이상규 교수는 "인간 구원의 원천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범신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연 모든 곳에 신이 있다는 건 거꾸로 아무 데도 신은 없다는 말로 통한다. 곧 무신론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불교=기독교의 날선 우려에 비해 불교의 입장은 부드럽다. 아바타라는 말은 고대 인도의 신앙에서 나왔다. 분신 또는 화신 정도의 뜻인데, 불교에선 보신불 또는 화신불의 형태로 받아들였다. 하나의 부처가 수많은 또다른 부처의 모습으로 세상에 현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라는 화엄의 세계와 아바타는 어우러진다. 영화에서 숲 속의 모든 나무는 뿌리의 신경망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도 말 없는 교감을 통해 생각을 주고 받는다. 나비족은 말한다. "그들은 모두 살아 있어. 인간 신경세포처럼 한 그루가 전체 나무와 소통해." 너와 나, 이것과 저것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세계관에 다름 아니다.

부산 미타선원의 하림 스님은 "한국을 비롯해 동양적 사고의 기준으로 봤을 때 그 깊이는 얕지만 영화가 어느 정도 불교의 가르침에 가까이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며 "기독교식 가치로 살아온 서구 사람들에게는 꽤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만도 하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볼 것인가=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의도했든 안했든 영화 '아바타'는 다양한 종교적 해석으로 재단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종교인들은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또 다른 종교 갈등으로 비춰져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이런 논쟁을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게 되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도 쥘베르 뒤랑이 꼬집은 도그마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한다. 산도, 들도, 나무도, 공기도 결국은 다 신의 창조물. 그 속에 녹아 있는 신의 존재를 느껴볼 필요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오랜 기간 종교적 다원성을 연구해 온 부산의 김상훈 주예교회 목사는 "기독교가 종교다원주의를 본질적으로 받아들여서 올바른 신학을 출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초월적인 신성은 빛과 미로 형상화된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좋은 예다. 중심을 지향하는 신학으로는 현 세계를 지탱할 수 없다, 그 중심을 해체함으로써 문화적 층위의 다양성을 수용하자, 그렇게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문화적 사례로 아바타를 보자, 그렇게 말하는 것일 테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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