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조 '공부의 신' 제2화~제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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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학습 플래너·칭찬 스티커 그게 뭐야"

"선생님, 이게 뭐예요?" 손바닥 크기보다 큰 수첩을 받아든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학습 플래너야. 1년 동안 너희들을 잘 이끌어줄 거야." 계획이란 건 방학 시작하는 날 말고는 세워본 적이 없는 남고 학생들에게 '플래너 수첩'은 생소하기만 한 존재.

하지만 이 수첩, 마력을 가졌더랬다. "플래너 덕에 머뭇거림 없이 매 시간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고요." 성적 향상도가 뛰어나 일본문화탐방 대상자에 뽑힌 전영환(고2)군 얘기다.

벼랑 끝에 다다른 학교는 2007년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개방형 자율학교로 선정되면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돌봄'을 시작했다. 1학년 밤 9시, 2·3학년 밤 10시까지의 기본자율학습 외에 11시30분까지의 심야자율학습 신청을 받았고 원하는 아이에 한해 '관리'를 시작했다. 365일 이른 새벽, 밤 늦은 시각 해당 학생이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는지 몰래 체크해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는 것은 물론 상담과 분석을 거쳐 개인별 포트폴리오도 작성했다. 선생님은 부모가 해주지 못하는 '돌봄'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제3화 공신비기 : 체험하고 스스로 하라

"치킨집 걸그룹 마케팅의 효과는?"

이 학교 1학년 5명이 이번 겨울방학 팀별 체험활동을 통해 조사한 주제다. 학생들은 실생활에서 느낀 궁금증들을 스스로 조사·분석해 "10대들에게 상당부분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3년 전 이 학교가 개방형 자율학교로 선정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스스로 하는 공부'였다. 이른바 자기성장프로그램. 체험학습과 스스로 주제를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제 연구 수업, 수준별 '심화학습 동아리' 수업 등도 모두 그 일환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2학년의 경우 지난 2008년 사교육을 받는 학생수가 151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99명으로 줄어들었다. 사교육비도 2008년 연간 5억2천320만원에서 2009년 3억840만원으로 2억여원 감소했다.

그렇다면 성적이 떨어졌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지난 3월과 9월 2학년 전국학평 모의고사 결과 교내 상위 40명 가운데 심야자습 참가자는 24명 중 20명(83%)의 성적이 상승했지만 불참자 및 학원 수강자는 16명 중 8명(50%)만이 상승했다. 또 자습 참가자 중 성적이 하락한 이는 한명도 없었으나 학원 수강자 중에서는 3명(19%)이 하락했다.



제4화 꿈을 키우자 세상으로 나가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하고 싶은 게 없어요." 현실이란 놈에게 꿈의 자리를 너무 빨리 내어준 탓이었을까. 아이들에게 꿈은 사치로만 여겨졌다. 이 학교 아이들 한 반 20여명 중 7~8명이 기초수급, 한부모가정, 또는 조손가정 아이들이다. 3년 전 이 학교에 처음 와 학생들을 만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벽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인문계 고교이긴 하지만 대학 등록금 때문에 대학 가기를 포기하려는 이들,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안 된다는 마음부터 먹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섬마을' 선생님들은 그러나 아이들의 눈을 키워주고 싶었다. 가슴 가득 넓은 세상을 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 학교에서는 동창회 지원을 받아 학생 30명을 데리고 9박 10일 미국 아이비리그 투어를 다녀왔다.

그뿐 아니다. 학교는 이달 말 성적 향상도가 높은 아이들 24명을 이끌고 2박 3일 일본문화탐방에도 나선다. 그 덕분일까. 눈을 넓힌 아이들의 꿈은 넓은 세상만큼이나 자라 있었다. 기자가 만난 아이들의 꿈은 CEO, 유니세프에서 일하는 것, 아프리카 자원봉사를 다니는 의사 등으로 지구 한바퀴를 돌아와 있었다.



제5화 '사람을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최근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가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기능'적인 부분은 학원에 내어줬고 아이들의 '인성'은 인터넷과 방송 등에 내맡긴 지 오래. 그리고 학교 밖으로, 밖으로만 떠도는 아이들."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원은 학원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보통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그렇지만 학교는 아니에요. 보통 아이들이 주인이죠." 이 학교 박경옥 교장의 이야기다.

부산남고 교사들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나와 밤 10시, 11시까지 학생들을 돌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교문 앞에 설 때는 아이들을 단속하고 검열하기보다 안아주고 맞아준다. 교사들은 또 등록금이 모자란 학생들을 위해 매달 월급에서 1만원씩을 떼 장학금에 보태고 있다.

이심전심. 마음이 전달된 것이었을까. 학생들은 '성적'보다 '성적 향상도'가 높은 학생을 우대하는 교사들을 믿고 따랐고, 지난 한 해 이 학교에 학부모 민원 전화가 한 통도 걸려오지 않은 '특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교사·학생·학부모가 일심동체가 된 것이다.



제6화 변화,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다

작은 시도들은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고1 당시 수능 3등급 수준에서 대입 수능 최고등급으로 올라선 이명준(19)군도 그중 하나. 이군은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나와 버텼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교 프로그램을 믿고 따랐더니 3년만에 훌쩍 자라 있더군요." 그 결과 이군은 최고 국립대 수준과 맞먹는, 4년 전액 장학금에 2년간 해외연수 기회도 얻을 수 있는 성균관대 글로벌리더 전형에 합격했다.

대학입시 성적은 3년 만에 200명 남짓한 졸업생 중 30여명(수시까지만. 정시까지 더하면 40여명 수준)이 서울대 등 부산대 이상 학교에 진학하는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학교 위상도 높아졌다. 지난해 학교가 받은 상은 교과부 교육과정 자율화 우수사례 선정 교과부장관상 등 5개에 이른다. 무엇보다 지난해 학생·학부모 학교 만족도 조사에서 '만족한다'고 답변한 이들이 90%를 넘은 것이 가장 큰 성과.

서울대 입학사정관이자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인 김경범 교수는 부산남고를 "사교육 없이도 충분히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할 만한 공교육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사진=이재찬 기자 chan@ 그래픽=박나리 기자 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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