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숟가락 하나로 만든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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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성 문학평론가

무한한 반복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혁명적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 무한 반복의 상징, 시지프스의 바위.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통의 칸은 고작 두 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지독하게 편식을 하는 식성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반찬통의 칸이 세 개나 네 개였다면 틀림없이 그 중 한두 칸은 빈 칸으로 남을 것이었다. 맞벌이 부모님들은 바빴고, 살림 또한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 도시락과 함께 나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수많은 장르의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도시락을 먹고 영화 음악에 빠진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 이를테면 나의 취향(taste)은 두 칸의 반찬통이 만든 셈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늘 비슷한 재료들로 밥상을 차리지만 '엄마손'이라는 마법의 봉을 휘두르는 순간, 밥상은 매번 다른 음식들로 채워진다. 자칭 '자립 음악가'인 '아마추어 증폭기(Amature Amplifier)'의 작년 음반 '수성랜드'(자체제작, 2009)를 '반복'해서 듣자니 두 칸밖에 없던 반찬통과 비슷한 재료로 밥상을 차리는 '엄마손'이 떠올랐다. 생각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 못한 도시 서민의 삶에까지 미친다.

자신의 골방에서 홈레코딩 방식으로 녹음한 후 혼자의 힘으로 CD를 제작하고 유통까지 하는 1인 시스템('아마추어증폭기' 또한 '한받'이라는 뮤지션의 원맨 밴드다)의 희귀한 밴드. 이들의 음악 또한 '반복과 변주'의 마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레어(rare) 아이템'(한정발매 제품이나 희귀 물품)이 아닐 수 없다.

고작 기타 하나의 반주와 2옥타브도 올라가지 않는 열악한 가창력. 그러나 '아마추어 증폭기'는 벌써 4장의 정규 앨범을 냈으며 꽤 많은 광팬들도 거느리고 있다. 거의 모든 노래가 3∼4개 코드의 단순한 주법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게 무한히 반복될 것만 같은 연주는 그러나 무산자의 좌절과 비애를 진솔하게 담아낸 가사와 어우러져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아마추어 증폭기' 앨범 속의 반복은 변하지 않는 삶에 대한 체념이 아니다. 차라리 변화의 수단을 가지지 못한 존재들이 견고한 삶의 반복 속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감각들의 집적물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저 반복되는 몇 개의 코드는 변화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의 삶의 양식과 닮았다. 이 단조로운 곡의 패턴은 무수한 동심원을 그리며 환각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이들의 '반복'이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그것과의 대면과 긍정의 표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정된 수단과 조건으로 직조하는 변주의 미학은 생활 속의 혁명을 환기한다. 그러니까 '아마추어 증폭기'는 자신의 골방에서 숟가락 하나로 샘을 만든 셈이다.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이 한사코 놓기를 거부하는 그 숟가락이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가난하지만, 그렇기에 한사코 홀로 서려고 하는 한 '자립 음악가'로부터 배우게 된다.



◇약력= 2007년 '작가세계' 신인상(평론 부문)으로 등단. 부산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저서로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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