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이야기] <1> 혼일강리역대국지도
입력 : 2009-12-28 15:05:00 수정 : 2009-12-29 09:31:39
대륙과 해양 이은 조선의 인터넷 '혼일강리역대국지도'

고지도는 지도가 그려지던 당시를 살던 사람들의 세계관과 우주관 즉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지도가 그려진 이면을 살펴보면 종교적 세계, 실재 세계 및 외국에 대한 인식 범위와 그 변화, 외세의 영향, 지도 제작의 기술 수준 등을 이해하게 된다. SEA&은 올해부터 고지도 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1421, 정화의 항해지난 2002년 영국의 퇴역 잠수함장교 개빈 맨지스가 세상에 내놓은 '1421-중국,세계를 발견하다' 는 우리의 상식을 180도 뒤집고 충격을 넘어 선정적으로 들리는 주장이었다.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내용은 명나라 영락제 시기의 정화 선단이 유럽에 훨씬 앞선 시기에 세계 곳곳을 항해했고 유럽인보다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영국 해군장교 출신으로 잠수함을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빈 저자가 신대륙 발견의 주인공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히 '주아네 피치가네'라는 서명이 든 해도를 보면서 시작됐다. 1424년이라는 연도가 표기된 이 해도에는 카리브해역이 상세히 묘사돼 있었던 것에 착안한 그는 "콜럼버스가 그곳에 도착하기 70여년 전, 누군가 이 섬들을 탐사했고 이를 해도에 남겻을 것"이라는 의문을 갖고 그후 14년 동안 무려 140여 개국, 900곳 이상의 문서보관소, 도서관, 박물관, 과학연구소, 중세 후기의 주요 항구 등을 답사, 마침내 '1421'을 완성했다.
달랑 지도 한 장에서 시작된 퇴역장교의 고민이 서양 지리상의 항해가 동양의 성과에 기인한 것이란 매우 놀라고 뒤집어지는 주장을 낸 것이었다.
정화의 항해를 말하면서 드는 생각은 "그러면 정화는 어떤 항해지도를 가지고 오대양육대주로 나아갔는가"하는 의문이다. 안타깝게도 정화의 지도는 전해지지 않는다. 정화의 항해 문서는 권력 투쟁의 와중에 철저하게 분서되었다.
혼일강리역대국지도대신에 당시 그려진 지도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지도가 바로 조선에서 만든 혼일강리역대국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사실 혼일강리도는 아프리카의 동·서·남부 해안이 정확히 그려진 당시로서는 최신의 지도였다. 이렇게 되자 "정화는 명나라에 바쳐진 조선사람이 만든 지도를 들고 1421년 대항해에 나섰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주장들이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서 혼일강리도의 연구에 몰두해 온 제주대 지리교육과 오상학교수는 "혼일강리역대국지도를 들고 정화가 대항해에 나섰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은 인터넷상의 가설에 불과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지도는 1402년 조선 건국 10년 후 국가적인 관심 아래 만든 지도였다. 지도를 보면 신생조선의 기운을 짐작하게 한다. 중화적 세계관에 기초하면서도 우리나라를 거의 중국과 대등하게 표현하여 우리 민족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개방적으로 세계를 파악하고자 했던 건국의지가 지도에 반영되어 다른 세계까지 자세히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오교수는 "이슬람 사회에서 전래된 지리 지식을 바탕으로 유럽, 아프리카 등 조선과 전혀 교류가 없던 지역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직방세계, 즉 중국과 중국에 조공을 받치는 나라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열린 세계 향한 정보망임진왜란 당시 일본 병사의 봇짐에 싸여 바다를 건넜거나 메이지유신시대에 건네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지도는 현재 사본이 일본 교토의 류코쿠대학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역시 이를 모사한 것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 하단에는 제작 경위를 밝힌 권근의 발문이 종서로 적혀 있는데, 내용은 "중국에서 제작된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중국 역대 국도의 변천을 나타낸 천태승 청준의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를 합쳐 하나로 만들고, 거기에 조선과 일본을 그려 넣어 건문(建文) 4년(1402년)에 완성했다. 조선의 중신 김사형과 이무의 명에 따라 이회가 두 지도를 편집하고 조선과 일본을 그려 넣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오교수는 "이 가운데 '성교광피도'에는 중국 이외의 지역이 자세히 그려져 있고, '혼일강리도'는 중국 역대 왕조의 강역과 도읍이 상세히 수록된 지도이다. 따라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그려진 유럽, 아프리카 부분은 '성교광피도'의 것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오교수는 계속해서 "이택민의 '성교광피도'는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중국 원나라 때 들어온 이슬람 지도학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면서 "지도의 아프리카 부분에 그려진 나일강의 모습과 지명들은 이슬람 지도학의 영향에 대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이슬람 지도학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는 세계관은 서로 다르다. 오교수는 "땅은 둥글다는 지구설에 기초한이슬람의 지도학과는 달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전통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천지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일부의 이술람 지도에서 보이는 경위선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지도의 형태도 원형이 아닌 사각형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고 밝힌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란 말 그대로 하나로 어우러진 땅(혼일강리) 곧 세계를 그린 것으로 그 속에는 열린 세계를 지향하며 미지의 세계까지 품어 안았던 조선의 문화적 자부심이 한껏 녹아 있다. 또 대륙의 동단에 위치한 폐쇄적인 나라에서 탈피해 대륙과 해양으로 향한 정보망을 구축하려 한 조선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하겠다.
SEA& 강승철기자ds5bsn@busanilbo.com
도움말=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오상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