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34> 합천 악견산~의룡산
한겨울에도 홀로 푸르고 짙은 솔향 선사
지난주 소개한 전남 광양의 따리봉~도솔봉 코스처럼 낙엽이 떨어진 헐벗은 산에 찾아올 눈의 흔적을 찾게 되는 곳이 있다면 그 대척점에 위치한 산도 있다.
암릉을 배경으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나 있어 한 겨울에도 홀로 푸르름을 더하는 그런 산. 낙엽의 흔적보다는 마치 털갈이한 짐승들의 털처럼 등산로를 뒤덮은 솔가리의 푹신함이 등산화 바닥으로부터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산. 거친 암릉을 오르내리는 힘든 산행 도중에도 코끝을 자극하는 짙은 솔향에 취해 피곤함을 잊게 되는 그런 산….
등산로 뒤덮은 솔가리 푹신함 '인상적'
합천호 드리운 안개, 고산준령 운해 연상
이런 조건을 다 갖춘 산이 정말 있을까 싶지만 경남 합천의 악견산(해발 634m)~의룡산(해발 481m) 코스를 다녀온 뒤로 온몸에 오랫동안 남은 감각의 흔적은 이 같은 기억을 증언해 주고 있다.
산이 주는 감각만 전부가 아니다. 산을 오르기 전 들었던 홍의장군에 대한 전설 또한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남다른 감동을 준다. 임진왜란 당시 적의 흉탄을 막기 위해 여자의 초경을 모아 칠한 갑옷(홍의)을 입고 왜적을 물리쳤다는 홍의장군 곽재우. 그가 악견산을 무대로 악견산과 금성산을 밧줄로 연결하고 붉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매달아 적들을 혼비백산케 했다는 전설만으로도 왠지 오르고 싶어질 정도다.
여기에다 악견산~의룡산을 찾은 날엔 한 치 앞조차 분간하기 힘들 만큼 짙게 드리운 합천호의 안개도 가세해 고산준령에서나 볼 수 있는 운해의 장관까지 선사했다.
산행은 합천댐 휴게소~전망바위~고인돌바위~산성터~악견산 정상~갈림길~안부~의룡산~암릉구간~용문정 코스로 이뤄진다. 위성항법장치(GPS)의 도상 거리는 6.4㎞. 거리는 비교적 짧은 편이나 암릉을 타고 가야 하는 구간이 많기 때문에 산행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휴식 포함 약 5시간가량 걸린다.
합천댐 휴게소가 산행 들머리가 된 것은 가슴 아픈 이유가 있다. 원래 산행 들머리 예정지로 잡은 곳은 합천댐 휴게소에서 평학동 방향으로 700m 쯤 더 간 곳이었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그 일대가 다 파헤쳐져 있어 산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휴게소에서 도로를 따라 2분쯤 간 곳에서 동광가든이 보이면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돌아 올라간다. 2분 뒤 왼쪽으로 정비된 등산로가 보인다. 등산로를 따라 가다 5분 뒤 왼쪽으로 산 능선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5분쯤 산을 오르자 오른쪽으로 무덤 2기가 보인다.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에도 짙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불량했다.
등산로가 약간 평탄해진 느낌을 받으며 15분 정도 더 올라가자 전망이 좋을 것 같은 전망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합천호 넘어 비녀봉과 오도산까지 보일 것 같았으나 짙은 안개로 전망확인이 불가능했다. 전망바위를 지나면서부터 악견산이 보여주는 골산으로서의 풍미가 제대로 드러난다. 앞을 가로막는 바위들을 짚어 올라가다 숨을 돌리려 오른쪽 뒤편을 돌아보는 순간 햇살에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마치 구름에 떠 있는 '천공의 성 라퓨타'(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나오는 전설의 성)처럼 생긴 금성산의 모습이 숨 막힐 듯 다가온다.
5분 뒤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를 지나 다시 5분을 더 가자 흔적만 남은 산성터가 나온다. 8분 정도 더 올라가자 왼쪽으로 악견산의 암릉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 뒤로는 운해 속에 멀리 미녀봉이 보일 듯 말 듯 솟아있다. 10여 분간 솔가리가 깔린 평탄한 길이 이어진 뒤 갑자기 바위 너덜겅이 나타난다. 3분 뒤 철계단을 지나고 다시 5분을 더 간 곳에 산성터를 하나 더 지나고 나면 비교적 수월한 길이 이어진다. 10분 뒤 오르막길을 잠시 오른 뒤 평평해진 지점에서 앞(북동)쪽으로 영상테마파크가 멀리 내려다보이면 그 곳이 갈림길이다. 당초 계획했던 등산로를 따라 올라왔다면 이 지점으로 올라오게 된다.
오른쪽 능선을 따라 계속 전진하면 바위 능선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3분 뒤 악견상 정상석을 지나고 좁은 바위 틈 사이를 이리저리 10여분 지나면 통천문을 하나 통과한다. 이 지점부터 내리막이다. 군데군데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 급경사 구간을 20분 정도 내려가면 갈림길이 보인다.
왼쪽은 평학동에서 올라오는 길. 오른쪽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13분 동안 밤나무 밭 사이를 지나 내려가면 안부. 왼쪽은 용문사 쪽으로 곧장 내려가는 길. 오른쪽은 오동골 가는 임도와 마주친다. 그대로 직진. 4분 뒤 무덤을 하나 지나고 15분을 더 올라가자 뒤쪽으로 악견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전망바위에 다다른다.
다시 능선을 타고 10분 정도 내리막길을 가자 안부를 지난다. 안부에서 의룡산 정상까지는 약 13분 정도 걸린다. 생긴 모양이 월출산을 닮았다고 해 '작은 월출산'으로도 불리는 의룡산은 능선 자체가 암릉으로 이뤄져 있다. 아차 하는 순간 왼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암릉을 조심조심 밟고 북서쪽으로 진행한다. 5분 뒤 무덤 하나를 지나고 13분을 더 가자 왼쪽으로 암릉과 암릉 사이 V자 모양을 이룬 하산 지점이 보인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가파른 암릉 하산길을 경험하게 된다.
8분 뒤 밧줄이 매달린 암릉을 미끄러져 내려가자 흙길이 나오는가 싶더니 또다시 암릉이 이어진다. 20분쯤 내려갔을까. 소방구조표지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길을 꺾어 밧줄이 매달린 바위를 또다시 내려선다. 이 지점부터 암릉이 잦아지면서 사면길이 지그재그를 이루며 내려간다. 15분 뒤 황강 물줄기를 건너는 지점을 통과한다. 이끼 낀 바위에 물기까지 묻어있어 미끄러우므로 주의를 기울인다. 강을 건너면 곧바로 도로가 나타난다. 도로를 건너가자 앞쪽으로 유적비가 보이고 그 오른편에 용문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행 문의: 레포츠부 051-461-4162,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글·사진=이상윤 기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