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 독서 지도법]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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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미 용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때 가끔 생각한다. '나 없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고 말이다. 이런 궁금증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다. 어릴 적 강아지를 키웠다. 가족 모두가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한바탕 집안은 난리가 난다. 강아지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두루마리 휴지로 화풀이를 했기 때문이다. 두루마리 휴지가 바로 축구공이 되었나 보다. 두루마리 휴지는 우리 집 독재자에게 끌려가다 지쳐 험한 꼴을 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흰 끄나풀들이 패잔병처럼 널브러져 있다. '이 녀석, 내가 없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했지?'라고 상상하며 강아지 콧잔등을 가볍게 톡톡 친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닐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호기심을 아주 기분 좋게 채워 주는 책이 있다. 바로 이호백님의 책이다. 책 제목도 바로 생각한 그대로이다.

아무도 없는 빈 집안, 잠겨지지 않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살금살금 토끼가 나온다. 맛있는 밤참도 먹고, 새우깡을 먹으며 만화영화도 보고, 화장대로 올라가 립스틱도 살짝 발라보고, 옷장을 뒤져 막내 돌 복을 꺼내 곱게 새색시처럼 입어도 보고, 장난감도 꺼내 한바탕 놀아본다. 참, 롤러 블레이드를 신고 멋지게 타봐야지. 앗! 생각났다. 폼생폼사. 부엌으로 가서 기다란 튀김용 젓가락을 스키 폴대처럼 쓴다. 토끼는 실컷 놀고 나서야 흔적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가족들은 수런수런. "아니 왜 이렇게 집 안 구석구석에 토끼 똥이 있지?" 하하하. 완전범죄란 없다. 토끼랑 우린 알고 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작가는 집에서 하얀 토끼 빨빨이와 예삐를 키웠다. 그 추억에 맛있는 상상력을 덧칠했다. 특히 이 그림책은 미국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2003년 최우수 그림책 10권 중 하나이다. 이호백님의 그림책은 참 좋다.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강에서 건져낸 금가루 같다. 가장 자연스러운 그림, 가장 감동적이고 예술적인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린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보다. 작가의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그곳에서 정성이 스며있다. 그래서 2001년에는 스위스 바젤에 있는 국제 어린이도서협의회(IBBY)에서 선정한 지난 50년간 만들어진 가장 우수한 어린이 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도시의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애완동물을 한두 번씩은 키웠을 것이다. 애완동물이 아니어도 좋다. 색연필이든 책가방이든 장난감박스든 상관없다. 상상에 날개를 달아보자. 나만의 '토이스토리'를 만들어도 좋고 '니모를 찾아서'가 되어도 좋다. '내가 없는 사이가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호기심의 씨앗을 뿌려본다. 아마 삐죽삐죽 초록빛 상상의 이파리가 돋아나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해보자. 아이랑 그림책 속 구석구석에 묻혀있는 토끼 똥을 찾아본다. 먼저 찾은 사람이 진 사람에게 간지럼 태우기를 하면 어떨까? 까르르 깔깔깔. 우리 아이가 진다면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검은 점 같은 토끼 똥. 그냥 대충 본다면 몇 번이고 책을 읽어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심하게 찬찬히 보면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루하루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내 눈앞에 있어도 토끼 똥이 잘 보이지 않은 것처럼. 사소할지라도 무언가에 상처입고 아픈 아이의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여 주자.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만으로 상처는 자연 치유되리라.



△자료=책이름 :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글 그림 : 이호백 / 출판사 : 재미마주


황미용씨는 현재 교육 사이트 아삭(www.asak.co.kr) 운영자이자 맘스쿨 창의력 논술강사. 저서로는 '깔깔마녀는 일기 마법사' '깔깔마녀는 독서마법사' '빙고 놀토 초등 - 체험학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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