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무너지는 아픔이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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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다 죽고 싶은 장애아 부모들

22일 문을 연 국내 첫 발달장애인 전용 복지관 '나사함 발달장애인 복지관'에서 교사와 장애인들이 어우러져 운동감각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나사함은 '나누고 사랑하며 함께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이다.

이런 말뜻을 가진 '나사함 발달장애인 복지관'이 부산 남구 대연동 한 조용한 주택가에서 22일 활짝 문을 열었다

이 복지관은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다. 국내 첫 발달장애인 전용 복지관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마음을 합해 이뤄냈다.

국내 첫 발달장애인 전용복지관 부산 대연동 개관

'나사함' 자비 등으로 건립 부산대서 프로그램 지원


사회복지법인 나사함복지재단 정수(65) 회장의 둘째 딸 정윤(32)씨는 다운증후군을, 재단의 방대유 이사장의 아들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다. 자폐성 장애나 다운증후군, 정신지체 등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발달장애인이라고 부른다.

"30여 년 전 딸이 지적 장애를 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포기와 절망이 꿈과 희망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딸아이는 제 삶이자 저의 심장이 됐습니다."

정 회장은 나이 마흔이 다 되어 평범한 회사원에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딸을 제대로 키워보려면 '돈'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부산대 특수교육과 강영심 교수와 특수학교 및 의료계 관계자 등 5명과 힘을 합해 사회복지법인을 출범시켰다. 현재 이사장을 맡은 방대유씨와 의기투합하면서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법인은 발달장애인들과 사회복지사들이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주간보호센터'와 '장애인 그룹홈' 등으로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뭔가 부족했다. 부족한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2년이나 기다려야했다. 그나마 발달장애 프로그램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방 이사장과 정 회장은 2006년에 부산 남구 대연동의 주간보호센터 터에 발달장애인 전용 복지관을 짓기로 마음 먹었다. '나사함' 자체적으로 6억3천만원이 넘는 자비를 들였다. 이들의 노력을 눈여겨봐온 부산시는 복지관 건립을 위해 시비 12억원을 지원했다.

부산대 특수교육연구소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전국 곳곳의 장애인시설을 돌며 설계도 마무리했다. 올해 초 지상 4층의 소담한 규모로 복지관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건립을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에 부딪혔다.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장애를 가져서 그렇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세요." 주민들을 일일이 설득했다. 주민들도 결국 이들의 아픔을 품었다.

복지관에서는 특수학교에 입학하기 전 유아기와 성인기 등 생애주기에 따라 음악·언어 치료와 주간보호센터, 직업재활, 운동감각 치료 등의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극도로 위축되거나 흥분하는 과잉행동을 보이면 물침대와 각종 조명, 음악, 그림 등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해 다독이는 '심리이완실'(스노젤렌)도 있다. 발달장애인 난타공연단 '당·나·귀(당신은 나사함의 귀한 존재)'를 위한 공연연습실도 갖추고 있다.

정 회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다 죽고 싶은 게 장애아 부모들의 소망이죠. 사회가 시스템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나사함'의 향후 목표는 장애인들이 자립 능력을 키워 결혼까지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한편 부산에는 등록된 발달장애인만 8천명이 넘는다.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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